해 보고 싶다고 말했으니까, 시도했으니까

by두근거림

정오가 되면 돌림노래처럼 들려오는 질문이 있다. "오늘 뭐 먹을까요?" 온라인 게임 동료 정희는 묻는다. "당기는 거 있으세요?" 나는 되묻는다. 우리는 한 가지 메뉴를 단 번에 말하는 경우가 드물다. 대화가 이어진다. "아무것도 말 안 하면 버거킹 갈 거예요" 같은 방식을 정희가 사용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세 가지 메뉴 중 골라주시겠어요?



좋아하는 음식은 물론 있다. 당기는 메뉴도 때때로 있다. 정희가 말한 선택지 중에 고르고 싶은 게 없으면 다른 보기를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먼저 말하지 않는다. 그 식당에 가서, 그 음식이 먹고 싶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던 식당, 메뉴를 정희가 우연히 먼저 말할 때면 슬며시 웃으며 그러자고 환대한다.


점심 식사를 주제로 정희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회사에 입사했다. 서로의 동료이자, 부서의 팀원, 한시계약직이라는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한시계약직은 최대 2년까지 일할 수 있다. 점심 메뉴를 고르며 정희와 웃고 떠드는 사이, 계약서에 명시된 각자의 마지막 날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수호샘, 다녀온 건 어땠어요?" 퇴근을 앞두고 정희가 물었다. 퇴사를 결정한 그와 달리 무기계약직 전환을 나는 신청했다. 매년 평가를 통해 계약을 정년까지 연장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조.. 조진 것 같은데요?"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던 어느 순간처럼 우리는 폭소했다.


면접 대기실에서는 마른침을 삼키는 서로의 소리가 초침 사이로 고요히 퍼졌다. 지원자는 3명. 우리는 준비해 온 서류를 담당자에게 제출하고 면접 시간이 다가오기를 초조히 기다렸다. "이제 이동하겠습니다" 면접실로 들어가는 순서를 담당자에게 듣고 우리는 준비된 의자에 차례대로 앉았다.


"먼저, 자기소개와 지원 동기를 OO 지원자부터 한 분씩 말씀해 주세요" 우리는 첫 질문을 시작으로 다섯 면접관이 준비한 평가 근거에 응답해야 했다. 모든 질문에 중간 차례였던 나는 할 말을 생각하면서도, 다른 지원자의 언어를 부지런히 쫓았다.


면접 대기실에서 준비해 온 자료를 읽고, 긴장감으로 경직되어 있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생각나는 내용을 어설프게 말하면서도, 다른 지원자들이 준비해 온 메시지가 고스란히 전달하기를 바랐다. 그들의 목소리가 떨리면, 작아지면, 죄송하다는 말이 들릴 때면, 기어코 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손 모아 기도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처음 지원한 회사에서 면접을 보았었다. 그때는 네 명의 지원자가 한 조를 이루어 면접실에 들어갔다. 우리는 준비된 사람이 먼저 손을 들고 발표하기도 하고, 서로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었다. 그날 면접을 본 많은 지원자 중 유일하게 우리는 면접에 모두 합격했다.


그러나, 이번 면접은 달랐다. 우리는 떨고 있었다. 면접실 내부는 우리가 자아내는 긴장감으로 중압되어 갔다. 우리는 한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위치였지만, 면접관들의 눈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이대로라면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좀처럼 멈출 수 없었다.


첫 온라인 게임에 입사했던 날로부터 13년이 지났다. 여섯 곳의 온라인 게임을 그간 거쳐왔다. 계약직일 때도, 정규직일 때도 있었다. 한 온라인 게임에서 다만 3년 넘게 근무한 적은 없었다. 계약 기간을 끝까지 채운 적도 없다. 상사가 붙잡아도, 나은 조건을 제시해도, 업무를 조정해 준다고 해도 망설임 없이 떠나왔다.


지금 다니는 온라인 게임에서 더 근무해 달라고 나를 설득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먼저 말했다. 2년 사이에 지친 나를 알고, 연차가 쌓일수록 짊어져야 하는 바카라임이 두려우면서도, 더 해보고 싶다고 처음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되고 싶고, 해보고 싶고, 아직 떠나고 싶지 않으니까 진정하기 어려웠다. 차분할 수 없었다. 담담할 수도 없었다. 면접실에 있던 우리는 저마다 이유로 합격이라는 결과가 간절했지만, 그럴수록 최종 합격으로 나아가는 길은 좁아져 가는 것만 같았다.


sunnivalode97-church-318772.jpgThis is an image by sunnivalode97 obtained from Pixabay.


"오늘 뭐 먹을까요?" 월요일이 되면, 정희는 물어볼 것이다. 나는 "교직원 식당으로 갈까요?" 되묻기로 결심한다. 건물 내부 공사로 문을 닫았던 교직원 식당이 내일부터 다시 운영된다고 한다. 식당을 이용하는 이들을 위해 경품 행사부터, 고진감래의 상징인 아이스크림 설레임을 나누어 준다고 한다. 더군다나 치즈 돈가스라는 메뉴는 빼박이다. 정희가 싫다고 해도 침을 튀겨가며 설득해야 할, 서로 다른 식당에 가더라도 지켜야 할 나의 선호를 반영한다.


면접에서 떨어질 수 있다. 나를 대신하여 다른 누군가가 붙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중요한 건, 더 근무하고 싶다고 말하고 필요한 과정을 거친 선택과 행동에 있다. 이제 면접 결과는 면접관들에게 맡겨 두기로 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남은 시간을, 다가오는 순간들을 나를 위해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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