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붉은빛으로 물들이면
초침을 멍하니 바라보던 언니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이 든 시각에도 고무나무 시계의 초침은 계속 계속 둥글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평선 같은 시간 위에서 언니는 꿈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꿈속에서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을 때 희미하게 들리던 음악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세모난 탁자에 올려져 있는 얇은 유리잔들이 미세하게 흔들릴 정도였다. 언니는 음악 소리를 따라 붉은 숲을 걸어갔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둥글고 작은 사람들이 피리 같은 것을 불며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숲은 온통 붉은 꽃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작은 사람들이 입은 초록색 바지가 더 눈에 띄었다. 언니는 그들을 조심스럽게 따라가기로 했다. 어쩐지 그들이 따라오라고 하는 것도 같았다. 단단하고 푹신한 새 베개를 밟는 듯한 숲길 끝에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여자의 치마는 폴짝 뛰며 춤을 출 때마다 당장이라도 하늘 위로 날아갈 붉은 풍선처럼 생겼는데 묘하게 그 점이 언니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여자는 춤을 추다가 언니를 발견하고는 놀란 듯했다. 안 그래도 바짝 올라간 붉은 속눈썹이 크게 떠진 눈 때문에 더 화려하게 보였다. 여자는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언니에게 다가와 보기 싫은 것을 억지로 봐야 하는 사람처럼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루비가 잔뜩 박힌 바구니로 언니를 끌고 갔다.
"그 검은 옷은 여기에 좋지 않아. 내가 그 옷을 밝게 바꿔주지!"
언니는 자신의 검은 옷이 밝게 변할 수 있다는 말에 입고 있던 옷을 건넸다.
여자는 검지와 엄지로 집게손가락을 만든 후 언니의 옷을 큰 루비 바구니에 넣었다. "자, 이제 옷이 밝게 변할 때까지 이곳에서 춤도 추고 모든 그 검은 것들은... 치워버리라고." 여자가 다시금 환해진 얼굴로 말했다. 언니는 여자의 말대로 푹신한 바닥 위에서 춤도 추고 붉은 주스도 마시며 즐거운 음악소리에만 집중했다. 둥글고 작은 사람들의 피리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앉은 붉은 장미넝쿨 아래에서 밝게 변할 검은 옷을 생각하며 붉어지는 노을을 바라봤다. 어쩌면 이곳에 왔을 때도 붉은 노을이 있었던 것 같았다. 저 멀리서 붉은 여자가 언니의 옷을 들고뛰듯 걸어왔다. 여자는 어딘가 불편하고 언짢아 보이는 듯했다.
"우리의 붉은빛으로는 이 냄새나는 검정 옷을 밝게 할 순 없을 것 같아. 미안하지만 이 검정옷을 입고 나가주겠어?"
언니는 처음과 달라진 게 조금도 없는 검은 옷을 다시 입고 돌아왔던 길로 걸음을 옮겼다. 다시 돌아오는 숲길에는 피리 부는 작고 둥근 사람도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집 안은 언니의 검은 옷처럼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