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바카라보다 사람을 먼저 품어야 한다

by고혜정

여행을 하다보면 다시 찾아가고 싶은 장소가 생긴다.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골목일 수도 있고, 전망 좋은 카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조금 특별한 장소가 있다. 일본 가나자와에 있는 이시가와현립도서관이다.

2023년 9월, 일본 철도여행 중 우연히 이 도서관을 찾았다. 처음에는 ‘새로 지은 유명한 도서관이라니 한 번 가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한 번의 방문은 여행의 기억을 바꿔 놓았다.

도서관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천장 끝까지 시선이 닿는 거대한 공간. 원을 그리며 층층히 이어지는 서가. 사방을 감싸는 수 많은 바카라. 마치 거대한 원형극장 안으로 들어온 듯한 압도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웅장함 속에서도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리혀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에게 익숙한 도서관은 대부분 조용하다. 문 여는 소리도 조심스럽고, 의자를 끄는 소리마저 눈치를 보게 된다.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몸도 마음도 저절로 움츠러들곤 한다.

하지만 이시가와현립도서관은 달랐다. 사람들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이 지나가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고, 누군가는 바카라을 읽고, 누군가는 노트북을 펼쳐 공부를 한다. 적당한 생활 소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지만 독서를 방해하진 않았다.


‘도서관은 원래 이런 곳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내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은 의자였다. 이 도서관에는 100여 종류의 의자와 500개의 좌석이 놓여 있다. 같은 의자가 반복되는 공간이 아니라, 가구 디자이너가 공간 전체의 분위기와 이용자의 독서 방식까지 섬세하게 고려해 하나하나 선택한 의자들이다.

나도 일부러 여러 자리에 바꾸어 앉아 보았다. 창가 의자에도 앉아 보고, 계단식 좌석에도 앉아 보고, 원형 서가 옆 의자에도 앉아 보았다.

의자가 달라지니 바카라을 읽는 자세도 달라지고, 창밖 풍경도 달라지고, 머무는 시간도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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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도서관은 바카라만 좋은 곳이 아니라,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어야 하는구나.’

이시가와현립도서관은 단순히 아름다운 건물이 아니다. 50년 넘게 사용한 기존 도서관을 대신해 2022년 새롭게 문을 연 이곳은, 바카라을 빌리는 공간을 넘어 사람과 문화를 연결하는 공간이라는 철학으로 만들어졌다. 원하는 바카라만 찾는 곳이 아니라 우연히 새로운 바카라을 만나고, 오래 머물며 생각을 쉬어갈 수 있도록 설계된 도서관이다.


여행을 하며 들은 이야기 중에는 이 도서관은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넣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개관 이후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도서관은 독서 공간을 넘어 하나의 명소가 되었다. 도서관 하나가 도시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처음 실감했다.


나는 바카라을 아주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도서관은 참 좋아한다. 누군가는 새로운 지식을 얻고, 누군가는 쉬어 가고, 누군가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바카라 한 권을 만난다. 그 모든 가능성을 품는 공간이라면, 도서관은 바카라을 보관하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품는 건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시가와현립도서관을 두 번이나 찾아간 이유는, 아름다운 건축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바카라보다 먼저 사람이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사람들이 바카라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공간에 머물고 싶어서 찾아가는 도서관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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