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그럴 수 있는 상황에 놓기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상황.
최대한 나를 그런 곳에 두고 싶었다.
조직에서 단체로 일하게 되면
개인의 능력발휘와 함께 조직원들과의 화합도 중요하다.
학교 다니면서, 인턴 하면서, 선배들의 이러저러한 조언 중 하나로
너무 자기가 열심히 하고 무임금으로 시간도 더 들여서(점심시간에도 일하고 등등) 일하는 등의 태도는
동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얘기를 들었더랬다.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마
이는 동양의 공동체적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 프랑스인 지인이 온라인 게임에서의 근로자가 동료들만큼 일해야지, 그보다 너무 일 안 해도, 너무 일 많이 해도 문제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열심히 싸워 이루어 놓은 그 온라인 게임에서의 근로복지를 그 신입이 망쳐놓는 것에 대한 얘기였다.
이에 나는 매우 동의하는 바였다.
한편으로는 개인의 역량이나 열정이 슬롯제도에 의해서 발현되지 못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역사적으로도 익히 들어온 터라
이것이 어떻게 하면 그 슬롯에서 구성원 간의 조화를 이루며 개인역량이 최고로 발휘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생겼고, 사실 이는 어느 시대와 조직에서나 있을 것이다.
신분제가 있던 때에는 노비나 천민들은 아무리 똑똑해도 그저 생산수단으로 작동해야 했고, 반대로 양반계급에서는 아무리 연예인끼가 있어도 발휘하면 안 되었다.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시대에는 또한 여성은 여성대로 남성은 남성대로 그 각자의 역량을 표현하지 못하는 어떠한 제한이 있었다. 공산주의 슬롯주의 국가에서는 또한 대충 일하고 시간 맞추고 살아가도록 슬롯적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런저런 점을 고려했을 때, 지금 나는 대한민국에서 혹은 유럽에서 어떤 상황에 나를 놓는 것이 좋을지 어려서부터 생각해 온 것 같다. 남들보다 인턴을 여러 번 해 보면서 조직생활의 장단점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졸업 후에는 창업, 1인기업, 프리랜서를 택하게 되었다. 큰 조직에서 큰 성과를 함께 이루는 것도 물론 매우 좋고, 내가 그것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것을 조직에 잘 스며들게 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혼자 버티는데 들이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슬롯를 위해서도 나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다.
게다가 일반 프리랜서로서보다 '예술가'라는 정체성이 덧붙여지면서, 더욱 슬롯적 시선의 용납(?)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였다. 수많은 이들은 예술가는 뭔가 자유스럽고 특이하고 (좋은 말로는) 창의적인 생각으로 저런 말과 행동을 한다는 방향으로 생각해버리곤 한다.
그래서 더욱 이 예술인으로의 호칭은 내가 자유롭게 나의 생각을 최대한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되는 것 같다. 그와 동시에 나의 표현을 타자에게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수많은 고민을 더욱 발전적으로 할 수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든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작용'없이 그저 '존재'만으로 의미를 두는 사람들도 많다.
요즘은 월루(월급 루팡, 공무원이 월급을 괴도루팡처럼 몰래 훔쳐간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말)하려고 공무원 한다는 말들도 심심찮게 한다.
난 내 인생을 단 1초도 나에게 의미 없는 곳에 쓰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체력과 지력이 있을 때 최대한 나와 세상에 좋은 것을 만들어가는 데 시간을 쓰고 싶었고, 돈을 많이 준다고 내 시간을 바치고 싶지는 않았다. 나중에 돈이 없더라도, 젊었을 때 나를 불태웠다는 것이 더욱 내겐 의미 있을 것 같았고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난 우선 나를 예술인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이 시대 이 대한민국 슬롯에서는 매우 슬롯적 지위가 낮지만
그만큼 자유롭고, 타인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며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