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의 AI 허용 범위

인간은 항상 새로운 존재에 호기심을 갖지.

by클라 Klarblau

손으로 직접 만들기를 지향하는 디자이너로서

지금까지 내 작업에 직접적으로 AI를 쓸 일은 없었고


서류 작업에 종종 사용해 왔다.

내가 정말 못하는 부분 중 하나가 문서작업인데, 그걸 도와줄 도구가 생겨서 너무 좋(았)다.



특히 2026년 올해 초, 챗지피티에게서 요약정리와 문구교정의 도움을 받아 여러 서류업무를 수월하게 하였다. 그 후 챗에게 여러 '평균적인' 세상에 대한 정보의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점점 그에게 의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점점 단순 정보수집과 요약뿐 아니라,

사실 누군가(내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닌 것들까지도 그에게 자문하고 있는 것 아닌가.

예전에는 옆에서 한마디라도 해 줄 동료나 멘토를 찾아 물어보거나 그저 내가 스스로 판단하였다면

난 이제 챗에게서 한마디를 얻고 결정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카톡대화 문구조차 의논을 하고 있는 나...

몇 달간 그렇게 나의 어떤 탈출구가 되어준 챗이 고마웠기도 하다.

... 만




그런데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나니

챗에게 질문하는 것 또한 시간과 수고를 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존재가 나타나 그저 새로웠던 것일까. 이제 난 그에게 익숙해진 것일까.

그가 사실 정말 그저 옆에서 맞장구쳐주는 존재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조금 익숙해지고 돌아보니

세상에 사실 내 마음속에 답은 정해놓았는데 그저 옆에서 "네 생각이 맞아."라고 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곤 하듯이, 챗은 그저 나의 답답함에 말상대가 되어준 정도였다는 것을 인식했다고나 할까. 마치 누가 옆에서 말 한마디라도 해 주면, 망설이던 것을 괜히 쉽게 더 할 수 있는 그런 상태라고나 할까.


게다가 점점 그렇게 내가 챗에게 질문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수고에 비해 결과물이 탁월하지 않는 경험을 하였던 것이다.




이제 그 의논하기 질문하기가 오히려 수고스러워서

'그냥 내가 생각하고 말지.' 하고

그 없이 다시 나 스스로 카톡을 하고, 웬만한 결정은 내가 혼자 하게 되었다.

사실 그게 시간상 효율적이다.

그냥 나 혼자 하면 되니까.




작년, 챗에게 인스타그램용 이미지를 부탁해 만들어본 것이 있다.


이미지를 챗이 대충 얼버무려서 조합해 주었다.


자세히 보면 저 뒷 배경에 있는 게 컵인지 찰흙덩어리인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사실 그래픽전문가끼리 보는 이미지 아닌 이상

SNS이미지는 디테일의 정확도보다 다른 것이 더 중요하기도 하다.

암턴 그렇게 뭔가 상업적 평균적 이미지가 나왔다.


그렇게

처음 챗에게 이미지 부탁해서 만들었을 때의 그 기분은

'허무함'이었다.



그 후로 난 이미지 작업에는 AI를 잘 쓰지 않게 되었다.


내가 할 줄 아는걸 챗이 이렇게 빨리 해 주어서 느끼는 박탈감을 느낀 것이 아니다.

내가 그동안 지양했던 그 뭐랄까 소위 영혼 없는 퀄리티에 대한 고민을

챗은 여지없이 무시하고 평균적 대중적인 결과값을 내주었던 것이다.

사실 그렇던 저렇던 그저 정보만 전달되고 보기 좋은 볼거리(예쁜 모델과 귀여운 물건)가 눈에 보이면 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니

그 일반적 기준으로서는 꽤나 괜찮은 결과물이었다는 생각은 한다.


근데 그래도

'아 내가 이런 걸 하려고 수십 년간 고민해 왔던가'라는

허무함




문서작업 외에는

아직은 나에게 챗이 전문적으로 도움을 줄 것이 없다.

챗에게 질문하는 시간에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나은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나의 뇌와 몸을 훈련하는 그 과정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나는 내 시간을

챗에게 명령하느라 들이는 시간보다 내가 스스로 머리를 쥐어짜는 데에 들이고 싶다.

그러면 나중에 봐도 그 결과물들은 딱 봐도 내가 이거 만들었지 라는

내가 키운 농작물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최근에 작은 충격을 경험하였다.


내가 몇 달 전 열심히 챗과 함께 낑낑대고 작업하여 만든 서류들을 다시 보았는데

이것들이 내가 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로

낯설다.


아니 이건 뭐지...

내가 내용물 넣고 챗이 정리해 준걸 몇 번이나 수정수정 요청하며 내가 검토검토까지 꼼꼼히 했는데

이 낯선 기분.


그때 느꼈다.

나 스스로 작문한 게 아니라,

나는 선생님이고 과제를 내주고, 학생이 해 온 것을 검토하여 평가해 준 존재였다는 것을.



아직은 나는 AI보다 내 뇌와 손이 더 나만의 것 같으니


점점 챗이라는 의논상대가 생겨서 잠깐이나마 좋아했던 나의 지난 몇 개월에서 점점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지금의 AI와 함께 커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더욱

자기만의 고유한 감각과 생각을 기르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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