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계획표를 쓰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말하면 그건 나를 감시하는 도구에 가까웠다.
오늘 할 일을 적어두고,
저녁이 되면 얼마나 지켰는지 스스로 채점하는 식이었다.
지킨 항목엔 체크, 못 지킨 항목엔 작은 죄바카라감.
계획표를 펼치는 일이 점점 나 자신을 다그치는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계획을 세우는 것만큼이나
그 계획을 지키지 못하는 나 자신을 자주 발견했다.
계획표를 넘겨보면 같은 목표가 몇 주씩 자리만 옮겨 다니고 있었고,
그걸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계획표가 나를 다잡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나의 부족함을 매일 확인시켜 주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불편함이 임계점에 다다랐을 무렵,
나는 계획표를 아예 덮어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매일 나를 평가하는 성적표 같은 걸 계속 들고 다닐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덮기 직전에, 문득 다른 방식으로 써보기로 했다.
지킨 것과 못 지킨 것을 채점하는 대신, 왜 못 지켰는지를
한 줄 적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피곤해서 미뤘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
"그냥 하기 싫었다". 평가가 아니라 관찰이었다.
이 작은 전환이 생각보다 많은 걸 바꿔놓았다.
못 지킨 계획을 적을 때마다 느꼈던 죄바카라감이,
그 이유를 적으면서부터 조금씩 호기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왜 유독 월요일마다 계획을 미룰까",
"나는 왜 저녁 약속이 있는 날엔 아무것도 못 해낼까".
계획표는 더 이상 나를 다그치는 도구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패턴을 관찰하는 창문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계획표를 펼치는 태도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엔 계획표 앞에서 각오를 다졌다면,
이제는 계획표 앞에서 나를 이해하려고 한다.
오늘의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 나를 멈추게 하는지.
계획표는 어느새 감시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나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관찰자의 자리로 옮겨가 있었다.
이제는 계획을 못 지킨 날에도
예전만큼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않는다.
대신 그 못 지킨 이유 속에서 나에 대한
힌트 하나를 더 얻는다.
기록은 나를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채찍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계획표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분들이 계신다면,
나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계획표는 당신을 평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오히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가장 가까이서
알려주는 다정한 기록일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