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예상 밖의 변화가 오히려 새로운 길이 된 경험

by꾸록

15년이었다. 학원 강의실 앞에 서서 아이들에게 문제를 풀어주고,

시험 기간마다 함께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보낸 시간이.

나에게 그 15년은 그냥 직업이 아니라 정체성에 가까웠다.

누군가 나에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강사예요"라고 답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엔 앞으로도 쭉 이 일을 하겠구나,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이들은 매년 바뀌었지만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었고,

그 반복 속에서 나름의 안정감을 느꼈다.

15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조금씩,

그러나 확고하게 내 인생의 방향을 굳혀놓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견고했던 확신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매년 반복되는 커리큘럼, 점점 좁아지는 시야,

강의실 밖 세상과 조금씩 멀어지는 듯한 기분.

처음엔 그저 지나가는 슬럼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균열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졌고,

결국 나는 15년 만에 강의실 문을 나섰다.


그만두고 나서야 실감했다.

나에게는 강사라는 이름 말고는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는 것을.


15년을 쌓아온 커리어를 내려놓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려니,

그 백지가 주는 막막함이 생각보다 컸다.

그때 우연히, 정말 우연히 흘러들어 간 곳이 블로그 대행사였다.


솔직히 처음엔 자신이 없었다.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설계하던 사람이

갑자기 클라이언트의 브랜드를 위해 글을 쓰고,

키워드를 고민하고, 마감에 맞춰 원고를 쳐내는 일을

한다는 게 낯설다 못해 어색했다.


강의실에서 15년을 보낸 사람에게 대행사의

속도감은 완전히 다른 언어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시작한 시간이 1년 반이 흘렀다.

돌아보면 그 1년 반은 강의실에서의

15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를 단련시켰다.


정답을 가르치던 사람에서, 매번 다른 클라이언트와

다른 톤 앤 매너에 맞춰 글을 짓는 사람으로.

한 사람의 학생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상상하며 글을 쓰는 법을,

나는 그 짧은 시간 안에 몸으로 배워야 했다.


무엇보다 그 1년 반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해 준 것이었다.


강의안을 짤 때도,

클라이언트의 업체를 위해 원고를 쓸 때도,

결국 나는 문장을 다듬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순간을 가장 즐기고 있었다.


15년의 강사 생활 안에서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나의 조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방향 전환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지만,

계획에 없었기에 오히려 나를 새로운 자리로 데려다준 길이었다.


15년을 지켜온 익숙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인생은 가끔 우리가 세워둔 계획표를 가차 없이 찢어버린다.

하지만 그 찢어진 자리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다음 장이 펼쳐지기도 한다.


15년의 강의실과 1년 반의 대행사를 지나온 지금,

나는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그 순간들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 어긋남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없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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