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안 되겠다, 정말 안 되겠다.

등원시간 1시간, 회사까지 3시간, 이렇게는 더 이상 못살겠다

by까꿍

10년 전 내 직업은, 하루 종일 뛰어다녀야 했던 직업이었다. 앉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그마저도 바빠서 거르기 일쑤였는데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는 와중 선배의 한마디가 들렸다.


"빨리 먹고 싶으면 국물에 밥 말아먹으면 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어 밥을 빨리 먹는 게 익숙하지 않았는데 이런 말을 들어버린 것이다.


10년 전이었다. 상사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을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지금도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이후 나는 국물에 밥을 말아 후루룩 먹는 게 습관이 됐다. 한 세 번 씹었나? 곧바로 '저 다 먹었습니다'하는 게 일상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상사분이 '정상에 왔네, 이제 하산해도 되겠어'라는 칭찬을 받았고, 그날로 이직을 결심했다.

전문직이 아닌지라 전문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고, 무엇보다 천천히 밥을 먹고 싶었기에 다시 돌아오면 된다는 호기로운 마음으로 이직을 결심했다. 됐다, 난 이제 다른 직업을 가지며 여유롭게 살 것이다. 월급 말고 시간 여유 말이다. 적어도 밥 먹는 시간이 보장되는…


이후 원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을 했다.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실적이 없어 면접에서 자꾸만 미끄러졌다. 100번 실패했고 1번 성공했다. 그 한 번을 위해 실적을 내고 학교를 가고 공부를 했다.

3천만 원과 3년의 시간과 3번의 최종 낙방 끝에 겨우 서울하늘 아래 내 바카라상을 갖게 되었다. 출근 날, 바카라상 위 이름표를 보고 감격에 겨워 사진을 찍었다.


그때가 내 인생의 봄날이었다.

늘 그렇듯 봄은 오래가지 않았다.

역시 월급쟁이의 삶은 거기서 거기였다. 매달 10일 월급날만 기다리며 인생과 월급을 맞바꾸었다. 그 사이 애를 둘이나 낳았고 휴직을 했다.

휴직 땐 좋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꽃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구름을 보았다. 평일날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바카라 읽는 사람들을 지켜보았고, 동네 냇가에 가서 오리가족을 관찰했다. 그러다 복직 전 6개월 정도는 매일 불안에 떨었고 이럴수록 더 잘 살아야 한다며 나를 몰아세웠다. 미친 듯이 육아를 했다. 6개월 후의 내가 얼마나 힘들어할게 보였기 때문에 나는 오늘을 잘 살아야 했고, 행복해야 했다. 행복해야만 했다. 행복 증후군에 걸린 것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온 동네를 쑤시고 다녔고, 어어어어 하던 찰나에 복직을 맞이했다.


가장 힘든 건 등원이었다.

첫째의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울기 시작한 것이다. 가기 전 1시간, 자기 전 1시간, 새벽 1시간,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매일매일 울었다. 애 둘을 각각 다른 어린이집에 보낼 자신이 없어서 꾸역꾸역 가기 싫다는 애를 어르고 달래서 어린이집에 겨우 등원시켰다.


그러다 보니 ‘쌍둥이 유모차 끌고 달리는 아줌마'가 내 상징이 됐다. 나는 모르지만 상대방은 날 알았다, 큰 유모차 우는 아이들, 힘들어하는 내 모습.

동네 소아과에 갔는데 ‘어? 그 베이지 색 유모차 끌고 다니는 어머니 맞으시죠?’


그 길로 나는 바로 베이지 색 유모차를 처분했다.


비 오는 날 등원이 가장 하이라이트였다. 비 오는 날,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등원시키고, 다시 또 돌아서 지하철역까지 가서 회사에 출근 안 해본 사람은 말도 말자.


어느 날은 비를 홀딱 맞고 애는 여느 날처럼 울고 있는 날 보며 ‘어머니, 많이 힘드시죠’라고 인사를 건넨 어린이집 선생님 앞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렸으니.


히끗한 흰머리, 땀에 절은 이마 초라함 그 자체였기에 애 둘을 등원시키고 오는 길 지하철역에 붙은 큰 거울을 늘 애써 외면했다.

거울 속엔 늙어버린 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머릿속의 나는 이토록 늙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인생이 어디로 흐르는지도 알지 못한 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정말 안 되겠다.


회사를 그만두기는 아깝고, 아직 배울 것도 많은데 그만두기는 아깝고 월급 생각하면 초파리처럼 작고 작고 또 작지만 이마저도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아쉽다.


그렇다면, 회사에 덜 다닐 방법이 있을까?

그때부터 궁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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