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이 여리지
살아온 세월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인간 한 명 한 명 일 대 일로 마주하면 아이같은 순수함이 비치는 순간이 있다.
내가 보기보다 대답을 잘 해주게 생겼는지, 도를 아십니까 세력이나 스티커 하나 붙여주세요 봉사하시는 전문요원분들만 열심히 내게 말을 거는 게 아니고, 어딜 가도 많은 질문을 아무 때나 받는다. 지하철 어디서 타냐는 문의가 가장 빈번하고, 오늘은 갑자기 가까이 서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평소 궁금한 게 있었는데 젊은 사람과 이야기할 기회가 없으셨다고 즐거운 마음으로 말을 걸어주셨다.
돈 드는 거 아니니 아무나 나에게 말할 수 있고, 만약 어떤 질문을 듣고 내가 즉시 답변을 할 적당한 답이 없고 5초 이상 머뭇거릴 정도로 솔직히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데, 할머니의 질문은 다행히 내 상식 선에서 충분히 답을 할 수 있어서 답을 했다. 주름 진 얼굴이 팽팽하게 펴지며 흡족한 미소가 얼굴에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꽃처럼 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뒤로도 몇 마디 더 하시고, '그러시냐'고 혹시 할머니가 내 말이 안 들리실까봐 좀 크게 말하고, 작별인사도 쾌활하게 드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잠시나마 외로운 할머니의 허전함이 채워졌으리라, 내가 오래 오래 꼭 안아드린 내 할머니 생각도 이어서 꺼내지고 모르는 할머니가 말 걸어주신 덕에 좋은 기억이 소환되서 새삼 고마웠다.
내 할머니와 사는 동안 서로 크게 서운한 일 없이 살았던지라 좋은 추억들만 남아서 떠올리는데, 그 것도 참 감사한 일이라는 걸, 좀 이상하지만 오래 전 들은 친구의 말이 불쑥 튀어나와 이런 상황에서 비교급으로 더 크게 대비되서 느낀다.
할머니가 손녀 차별이 심심해 아무 잘못없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미워하며 모진 말을 했다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 때 그 감정 속 어린 내가 되어 서럽다던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참 서러웠던 말도 고마운 말만큼이나 수명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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