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래? 꼭 매사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신가요?많이 듣는 편이신가요?
저는 일을 할 때는 전자가 되고, 평소에는 후자가 되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저를 매사 이해하지 못하겠는 가까운 이는 저를 보고 자주 '왜 그런 건지' 묻고, 제 말을 듣고는 절레 절레 고개를 가로 저어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종족이라는 반응인거죠.
저는 그런 상대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 이유를 굳이 묻지 않고도 과거 누적된 데이터 기반으로 헤아려 유추한 후 잘 아는 편이지만, 납득이 안 될 때가 있어요. 마음에 안 드는 면이라는 의미인데, 제 말 한 마디로 고쳐지기 쉽지 않고, 당사자가 고칠 의향을 가지려면 스스로 문제라고 인지해야하는데 그럴 리 없죠.
대체로 어떤 분야는 나 자신에게 가장 엄격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굉장히 관대하다 싶을 정도로 너그럽게 판단하니까요. 그래야 스스로 그나마 덜 괴롭히고, 숨도 편히 쉬어가며 사는 거겠죠. 매사 깐깐하면 숨 막혀요. 저도 저 자신에게 그런 태도를 적절하게 취사선택하듯이 상대에게도 그래야 한다고 보고, '남에게 기대하는 내 과도한 욕심을 탁 놓아버리는 순간'을 종종 경험하곤 해요.
내 욕심은 나를 위한 것, 내가 보기 편하고 듣기 좋으려고 바라는 거지 상대는 나를 기쁘고 만족스럽게 하기 위해 거기 서서 숨 쉬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소싯적에는 되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했던 적이 있다보니, 본능을 거스르며 무진장 애를 써 봤죠. 감히 초우월적인 존재, 이상적인 신의 모습을 상정해 애를 써봤는데 제 현실 속 작은 마음과 처지에 비추어 고통이 깊어질 뿐 결국 큰 산은 넘지 못했어요. 노력해도 안 되는 건 못하는 거예요. 하면 언젠가 되는 게 있고, 해도 할 수 없는 게 있죠.
너무 싫은 사람마저
넉넉하게 품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살며 조사하고
관찰해서 확인한 바로는
현재 이 지구상에는 없다.
포옹과 포용 -
와락 껴안은 것이 아니라
내버려 둔 상태 -
그저 상대를 자유롭게 살도록
내 욕심을 포기한 거다.
모든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그리 깊지 않은 것으로 증명된 이기적인 제가 여기서 가장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제 안의 한계와 끝을 볼 때까지 인내심있게 몇 년이고 끈기있게 해보는 편이라는 거예요.
남이 맘에 안 드는 것은 당연하고, 그는 자신의 말과 행동, 사고를 자신의 주관대로 장착할 수 있다. 나는 영 불편한 사람과는 안전한 거리를 최대한 멀리 설정하고, 편한 사람은 누가 안 시켜도 가까이에 두고 싶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은 평범성의 범주 밖으로 나아가려는 순간 고통의 레이스가 시작돼요. '사는 게 원래 다 그렇고 고통의 연속이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부러 그 고통의 망망대해 속으로 안전 장치도 없이 들어갈 필요는 없죠. 저는 무지해서 굳이 다녀오긴 했어요. 하지만 또 누가 거기를 직접 간다고 하면 엄연히 타인으로써 감히 못 말리겠죠. 저도 때로는 어떤 것에 대해 다부진 결심 후 즉시 행동으로 옮겨 바쁘고 분주하게 착수해 몰입하다보니 혼자만의 세계에 심취해서 아무도 못 말리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거든요.
각자의 고집과 욕심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사는데, 굳이 안 바뀌는 남을 보고 한숨 짓지 말고, 어차피 나도 나 자신 못 바꾸니까 가볍고 경쾌하게 걸을 수 있는 길로 가보시죠. 웃고 떠들고 만나면 반갑다고 신나게 이야기 나누고 아쉬움도 미련도 없이 손 흔들고 헤어지는 게 이 지구 위 여행의 최선이라고 봐요.
맛있는 건 적당히 먹고(운동 찔끔해서는 그 살들 빼기도 힘들어서 ㅎㅎ), 꼬불꼬불 꼬인 길 밀리고 답답하더라도 그 와중에 즐거운 여행, 사고없는 안전한 이동, 만나는 사람들에게 큰 기대는 내려놓고 여린 마음 다치는 일 없는 추석 연휴 보내시기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