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2026년 6월의 마지막 밤에, 며칠 뒤 뉴욕 출장을 앞둔 조카와, 한 편의 영화를 마주했다.
제목에서 느끼는 것처럼, 패션 산업을 배경으로 한 성공과 성장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조카 부부가 미리 준비해 둔 치킨과 맥주로 영화는 시작되고........... 어? 이거 뭐지? 시간이 흐르면서 이 영화는 한 시대의 욕망과 권력, 기호와 인간의 관계를 해부하는 하나의 철학적 텍스트처럼 느껴졌다.
영화 속 세계는 끊임없이 기호를 생산한다. 옷, 브랜드, 표정, 말투, 취향, 인간관계까지 모든 것은 하나의 언어가 되어 작동한다. 사람들은 옷으로 의미를 입고, 브랜드를 통해 슬롯적 위치와 정체성을 소비한다. 이런생각에서 복잡해졌다.
그렇다. 익숙한 병아리 탈출기? 그런건 아니고.
카메라 앵글은 조금 오래된 느낌이지만, 화면 속 뉴욕과 그 속의 패션? 암튼 보이는 것들은 아주 세련된 모습이다. 20년 전 영화가 아닌 듯하다.
그렇다.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이미지와 취향 뒤에는 얼마나 많은 슬롯적 코드가 숨어 있나. 영화 속 런웨이의 세계는 아름다움의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규칙과 질서가 끊임없이 인간을 평가하고 분류한다. 잔인할 정도로 가치를 자른다.
또한 미란다라는 인물을 바라보며 미셸 푸코의 권력 개념이 생각났다. 권력은 누군가의 명령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과 규범 속에 스며들어 스스로를 통제하게 만든다. 미란다는 스스로가 자신이 지배하는 세계의 질서에 갇힌 존재인지 모른다.
앤디의 변화는 한 인간이 새로운 세계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낯선 규칙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질문은 남는다.
내가 변한 건가? 아니면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욕망을 발견한 건가?
이 질문 앞에서 자크 라캉의 욕망 개념도 떠오른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경우 타인의 시선 속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배운다. 앤디가 입는 옷, 선택하는 태도, 올라가는 위치는 욕망의 재구성이다.
그리고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관계의 구조 속에서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구조적 사고와 질 들뢰즈가 바라본 생성과 변화의 철학까지 겹쳐 보였다. 지난 수년 동안 철학에 빠져서 그런지도 모른다. 특히 지난 3년을 석사과정 속에서 생각이 그런 쪽으로 기울었을 것이다.
20년 전에 봤다면 아마 성공과 실패, 꿈과 현실의 이야기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때가 휴대폰 생산 기업에 몸담고 열심히 일할 때였으니까. 하지만 57세의 여름에 만난 이 영화는, 인간이 어떻게 슬롯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자신을 만들고 또 잃어가는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철학서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머리가 조금 아팠다.
영화 한 편을 본 것인지, 아니면 지난 20년 동안 내가 지나온 시간과 다시 마주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좋은 작품이란 보는 사람의 시간이 쌓일수록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나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며, 등장인물들의 관계 속에 숨어 있는 욕망과 권력, 선택과 변화의 구조를 천천히 기록해보려 한다.
이 글은 평론이 아니다.
한 사람이 한 편의 영화와 20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나눈 늦은 대화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