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시티 광장

by원성진 화가

성당의 거대한 문 밖으로 나서는 순간,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한 인파가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도 빽빽하게 서 있었다. 광장의 돌바닥 위, 거대한 기둥 회랑 아래, 분수대 주변, 멀리 이어진 거리까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단 하나의 장소를 향하고 있었다.

성당 상층부의 작은 창문.

너무 멀어서 손톱만큼 작게 보이는 창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창 하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놀라울 만큼 간절했다. 누군가는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있었고, 누군가는 눈시울을 붉히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아버지의 어깨 위에 올라탄 채 작은 손을 흔들고 있었고, 어떤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묵주를 쥔 채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거대한 침묵 속에서 나는 압도당했다.

수십만 명이 모여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광장은 소란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숨을 죽인 듯한 기다림이 광장 전체를 덮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도와 희망, 사랑과 절망, 용서받고 싶은 마음과 누군가를 위해 빌고 싶은 마음들이 겨울 공기 속에 녹아 하나의 거대한 숨결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내가 조금 전까지 어디에 있었는지를.

나는 방금 저 수십만 명이 간절히 들어가고 싶은 공간 안에 있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에서, 교황님과 함께 같은 시간 속에 머물렀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생애 처음으로 미사와 성체 성사를 경험했다.

그 사실이 갑자기 믿기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버스가 오지 않아 초조해하던 평범한 여행자였다. 낯선 의식 속에서 어색하게 사람들의 움직임을 따라 하던 무신론자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가장 거대한 영적 순간 중 하나의 중심을 지나온 사람이 되어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광장을 가로질러 불어왔다.

그 바람은 단순한 겨울바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기도와 숨결이 함께 섞여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 누군가의 슬픔, 누군가의 감사와 희망이 바람 속에 실려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바람을 맞으며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왜 그렇게 벅차오르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특정한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날, 인간이라는 존재가 왜 오래도록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왔는지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너무 외롭고 연약해서, 결국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게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신앙이라는 것도, 끝없이 사랑과 평화를 갈망하는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 낸 가장 아름다운 언어인지도 몰랐다.


나는 광장을 빠져나오며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조금 전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휴대폰 속 흔들리는 화면에는 성당 안에서 가까이 지나가시던 교황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화면은 완벽하지 않았다. 초점은 흔들렸고, 소리도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작은 화면을 바라보며 놀라울 만큼 환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는 연신 “오!” 하고 감탄했고, 누군가는 마치 직접 교황님을 뵌 것처럼 손으로 입을 가렸다. 서로 언어는 달랐지만, 그 순간 우리는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눈빛 속에서 깨달았다.

행복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질 때 더 커진다는 것을.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어떻게든 더 가까이에서 교황님을 찍고 싶어 안달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본 것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기쁘게 느껴졌다.

그날의 경험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발견이었다.

미사 중 느꼈던 침묵과 향내, 종소리와 성가대의 울림, 낯선 수녀님의 친절, 아이들을 바라보던 교황님의 눈빛, 그리고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간절함까지. 그 모든 순간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람은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평화란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조금 더 따뜻해지려는 마음속에서 시작된다는 것.

나는 그날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신을 본 것은 아니다.

대신 인간 안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가능성을 보았다. 낯선 사람을 품어 주는 친절,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 서로의 슬픔을 함께 견디려는 따뜻함.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신성한 빛인지도 몰랐다.


광장을 천천히 걸어 나오며 나는 뒤돌아 성당의 돔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새해의 햇살이 거대한 돔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축복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오늘의 기억은 앞으로 내 삶이 흔들릴 때마다 다시 돌아오게 될 하나의 나침반이 되리라고. 삶이 거칠어질 때마다, 세상이 너무 차갑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오늘의 이 공기와 빛, 사람들의 눈빛과 따뜻함을 떠올리게 될 것이라고.


신은 서로를 사랑하려는 인간의 마음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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