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다.

by원성진 화가

“미사가 끝날 무렵, 중앙 복도로 교황님께서 지나가실 겁니다. 그때가 가장 가까이에서 뵐 기회예요.”

수녀님의 조용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는 순간,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머릿속에서는 순식간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디로 움직여야 하지? 어느 각도에서 촬영해야 할까?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자리를 잡아야 하나? 손에 쥔 휴대폰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는 성당 뒤쪽이었다. 처음에는 아쉬웠던 자리였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상한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어쩌면 오늘, 단 한 번이라도 아주 가까이에서 교황님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당 안의 분위기가 눈에 보일 만큼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어수선하게 중앙 복도 쪽으로 기울어졌다. 누군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길게 빼고 있었고, 누군가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조용히 숨을 삼키고 있었다. 웅성거리던 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대신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거대한 성당 안을 천천히 채워 갔다. 마치 폭풍 직전의 바다처럼.


그리고 마침내 사람들 사이로 교황님이 모습을 드러내셨다.

휠체어를 타고 천천히 중앙 복도를 따라 다가오시는 모습. 그 순간 성당 안의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았다.

나는 처음에 위엄을 보게 될 줄 알았다. 세계 수십억 신도의 정신적 지도자, 역사 속 교황들의 계보를 잇는 거대한 존재. 그러나 실제로 내 눈앞에 다가오고 있던 것은 권위보다 훨씬 더 따뜻한 무엇이었다.

그분은 마치 아주 오래된 나무 같은 사람이었다.
수많은 시간과 고통, 기도와 사랑을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온기가 얼굴 전체에 스며 있었다.

교황님은 천천히 사람들을 바라보셨다. 그 눈빛에는 깊은 평온함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분이 내 앞을 지나가셨다.

불과 1미터.
정말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였다.

수많은 영상과 사진 속에서만 존재하던 인물이 실제 인간의 온기와 숨결을 지닌 존재로 눈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얼굴의 주름, 부드럽게 흔들리는 손끝, 사람들을 향해 미소 지을 때 눈가에 생기는 잔잔한 표정까지. 그 모든 것이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또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든 이 순간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람들 틈 사이로 몸을 기울이며 화면을 맞추고, 흔들리는 손으로 초점을 잡고, 다시 녹화 버튼을 확인했다. 내 몸은 거의 본능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눈으로 교황님을 바라보면서도 한편으로는 화면 속 프레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아마 그 순간의 나는 우스꽝스럽고 서툴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인간은 너무 아름다운 순간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붙잡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교황님은 어린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고 계셨다. 아이들의 손을 잡아 주고, 머리를 쓰다듬고, 아주 천천히 미소를 지으셨다. 그 미소는 어떤 거대한 종교 지도자의 표정이라기보다, 세상의 슬픔을 오래 바라본 사람이 끝내 잃지 않은 따뜻함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눈빛이 아주 잠깐 내 쪽을 스쳐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인간 안에도 신성함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끝없이 사랑하려 했던 시간, 사람들의 고통을 품으려 했던 마음, 그 오랜 기도의 흔적이 한 인간의 표정 속에 새겨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압도했다.

그분의 손짓 하나, 미소 하나. 그것은 하늘이 인간을 통해 세상에 보내는 아주 작은 위로 같았다.

어쩌면 사람들은 신을 보기 위해 성당에 오는 것도 있겠지만, 서로의 따뜻함 속에서 하늘의 흔적을 발견하기 위해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교황님이 천천히 내 앞을 지나가시는 동안, 성당 안의 공기는 눈물 직전의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누군가는 울고 있었고, 누군가는 손을 흔들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두 손을 꼭 모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설명할 수 없는 벅참 속에 서 있었다.

내 손은 계속 촬영을 이어 가고 있었지만, 사실 그 순간 내 안에 새겨지고 있던 것은 영상이 아니었다.

사람의 온기였다. 누군가를 향한 사랑의 표정이었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하고도 깊은 축복이었다.

미사가 끝난 뒤에도 나는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정신없이 촬영하느라 결국 수녀님께 마지막 인사조차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제야 마음에 밀려왔다. 나는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라도 다시 만나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이미 그녀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 뒤였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시렸다. 이름도 모르는 한 사람의 친절이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을 줄은 몰랐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오늘 내가 정말 가까이에서 만난 것은 교황님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낯선 이를 부끄럽지 않게 품어 준 수녀님의 작은 배려, 아이들을 바라보던 교황님의 눈빛,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던 침묵과 기도. 내가 마주한 것은 거대한 종교의 권위가 아니라 인간이 서로에게 건네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성당 의자 위에 놓여 있던 미사바카라 다섯 권을 챙길 때도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그때는 기념품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들은 점점 더 특별한 물건이 되어 갔다. 종이 냄새가 밴 얇은 바카라 속에는 그날의 공기와 빛, 향내와 종소리, 그리고 한 미국인 수녀님의 따뜻한 손짓이 함께 접혀 있었다.

어쩌면 너무 많지 않아서 더 귀한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날 찍은 영상을 다시 본다. 흔들리는 화면 속 교황님은 여전히 작고 흐릿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날의 감정만은 너무도 선명하다.

영상 속에는 담기지 않았던 공기의 떨림, 향 냄새, 사람들의 숨죽인 침묵, 그리고 내 안에서 무너져 내리던 오래된 감정들까지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그날 내가 얻은 것은 단지 교황님을 가까이에서 본 기억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인간이 서로에게 건네는 친절 하나가 얼마나 깊은 구원이 될 수 있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사랑과 평화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가는 아주 작은 손길에서 시작된다는 것도.


성당의 문을 나서며 광장을 바라보던 순간, 나는 분명히 느꼈다.

하늘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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