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트레비 분수

by원성진 화가

새벽의 결이 아직 공기 속에 남아 있는 시간, 트레비 분수 앞에 다시 섰다. 물은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그 위를 스치는 빛선은 다른 날섬 이었다. 이곳의 돌은 오래된 시간의 온도를 품고 있다. 손으로 만지지 않아도 느껴진다. 공기 속에 스며 있는 시간의 결이. 시각이 촉각이나 후각에 우선한다.

분수 가까이 다가가려다 멈췄다. 접근금지 형광색 줄이 쳐저있다. 가까이 갈 수 없음이 오히려 더 깊이 바라보게 만든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또렷해진다. 일정한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리듬. 물줄기 하나하나가 각자의 시간을 갖고 떨어진다. 나는 그 소리를 귀로 듣지 않는다. 가슴 어딘가로 받아들인다. 그 울림이 몸 안쪽에서 퍼진다.

주머니 안에 유러화 동전을 만지작. 금속의 차가움이 손바닥에 닿는다. 아주 잠깐, 망설임이 머문다. 이 작은 원형의 물질이 시간을 건너갈 수 있을까. 던지는 순간, 손끝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지금의 나라는 감각의 일부다. 동전이 물에 닿는 소리. 짧고 분명한 파열. 그 직후에 번져가는 원형의 파문. 나는 그 파문을 눈으로 따라가지 않는다. 오히려 몸이 먼저 반응한다. 가슴 한가운데에서 같은 형태의 흔들림이 천천히 퍼진다.

파문은 사라진다. 그러나 사라지는 방식이 이상하다. 보이지 않는 층으로 스며든다. 물 위에서 사라진 원은 내 안에서 더 또렷해진다. 기억이라는 것은 어쩌면 이런 방식일 것이다. 눈앞에서는 희미해지면서, 안쪽에서는 더 깊어지는 것. 나는 그 자리에 잠시 서서, 나 자신이 잔잔해지는 시간을 기다린다.


걸음을 옮긴다. 숨이 조금 더 또렷해진다.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치고, 폐 안으로 천천히 내려앉는다. 공기의 온도가 몸속에서 형태를 갖는다. 한 모금의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쓴맛이 혀끝에서 시작해 목을 따라 내려간다. 그 짧은 순간, 몸 전체가 한 점으로 모였다가 다시 풀린다. 감각은 언제나 현재에만 존재한다. 그래서 이 순간은 생각보다 훨씬 선명하다.


진실의 입 앞에 도착했을 때, 문은 닫혀 있었다. 나는 문 앞에 서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는다. 손잡이를 잡지 않는다. 닫힌 상태 그대로를 바라본다. 바깥으로 열리지 않는 순간, 시선은 자연스럽게 안으로 향한다. 진실이란 닫힌 문 앞에서 시작되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다시 길을 걷는다. 키르쿠스 막시무스를 끼고 이어지는 길 위에서, 발을 디딜 때마다 아주 작은 소리가 난다. 돌과 신발이 부딪히는 건조한 마찰음. 그 소리가 반복되지만, 같은 소리는 없다. 발걸음의 무게가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왼발과 오른발의 균형, 몸의 중심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방향, 그날의 감정이 실린 압력. 이 모든 것이 소리를 바꾼다.

나는 길 위에 서 있는 나를 느낀다. 발바닥에서 시작된 감각이 종아리로, 허벅지로, 척추를 따라 천천히 올라온다. 몸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균형은 끊임없이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지는 과정이다. 걷는다. 이것은, 그 미세한 붕괴를 계속해서 회복하는 행위다.

길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매 순간 달라진다. 같은 돌 위에 발을 올려도, 그 돌을 밟는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과거의 발걸음은 이 길 어딘가에 압력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흔적들. 그리고 지금 내가 남기는 이 무게 역시 언젠가 또 다른 시간 속에서 감지될지 모른다.


나는 잠시 멈춘다.

눈을 감지 않는다.

대신 시선을 낮춘 채, 바닥을 바라본다.

거칠게 마모된 돌의 표면, 수없이 깎이고 닳아 만들어진 미세한 굴곡들. 이 표면은 시간의 단면이다. 수천 번의 발걸음, 수백 년의 비와 바람이 만들어낸 조각. 나는 그 위에 아주 조심스럽게 발을 얹는다. 마치 누군가의 기억 위를 걷는 것처럼.

그 순간, 하나의 생각이 아주 천천히 스며든다.

시간은 겹쳐진다.
'지금 이 발걸음 위에 과거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다시 내가 올라선다.'
'그래서 우리가 산다는 건, 쌓여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걷는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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