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유영하는 2층버스

트레비 분수, 콜로세움

by원성진 화가


트레비 분수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낙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지만, 걸음은 점점 더 늦추었다. 발이 먼저 속도를 줄였고, 시선이 그 뒤를 따랐다. 바람에 물 냄새가 섞여 있었다. 골목의 그늘에서 머물던 차가움이 점점 풀리며, 아주 얇은 온기가 피부 위에 스며들었다. 그 변화는 급격하지 않았다. 물감이 물 위에서 천천히 번지듯, 공기의 결이 부드럽게 이동하고 있었다.


아직 분수는 보이지 않았지만, 물소리는 선명해졌다. 관광객들의 웅성거림과 함께, 일정한 박자를 거부하는 흐름. 떨어지고, 흩어지고, 다시 부딪히는 소리들이 겹겹이 얽혀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귀로 듣고 있었지만, 동시에 눈으로 바라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소리는 형태를 갖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분명 어떤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물줄기가 공간을 채우고, 그 안에서 시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분수 앞에 선 사람들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손에 쥔 동전이 빛을 받아 잠시 반짝이다가, 이내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 짧은 궤적은 하나의 선처럼 보였다. 공기에서 물로, 빛에서 흐름으로. 나는 그 장면을 마치 화면 위에 옮겨 그리듯 천천히 따라갔다.


동전이 물에 닿는 순간의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물소리 속에 섞여버렸기 때문이다. 그 작은 금속은 자신이 떨어졌다는 사실조차 드러내지 못한 채, 곧바로 흐름 속으로 흡수되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이상한 고요를 느꼈다. 간절함이 던져지는 순간조차, 세계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간다.


소원은 미래를 향하지만, 던지는 손의 감각은 철저히 현재에 있다. 차가운 금속의 무게, 손끝에서 떠나는 순간의 가벼움, 그리고 그 뒤에 남는 아주 짧은 공백. 인간은 그 공백 속에서 무엇인가를 바란다. 그러나 물은 어떤 의미도 붙잡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이고, 다시 흘려보낸다.


나는 분수의 가장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눈앞의 물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하나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흐르고 있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 변화하고 있지만 무너지지 않는 것.


다시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아직도 느리다. 이제는 속도를 줄이려는 의도조차 사라지고, 그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순간을 더 오래 느끼게 되었고, 발을 떼기 전의 미묘한 균형까지 인식하게 되었다.

로마의 골목은 시선을 위로 끌어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낮추게 한다. 벽의 표면, 바닥의 결, 빛이 닿는 경계. 나는 수많은 작은 장면들을 이어 붙이며 걷고 있었다. 시선이 겹겹이 쌓였다.


이곳에서는 서두를 이유가 사라진다. 빠르게 지나치면 놓치게 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시간은 더 이상 앞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옆으로 퍼지고, 아래로 스며들고, 위로 떠오른다. 나는 그 안에서 여러 개의 층 위를 천천히 미끄러지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시티투어 버스에 올랐다. 역시나 2층버스. 시선의 높이가 바뀌었다. 방금까지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던 벽들이 멀어지고, 길들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아래에서 보던 세부들이 사라지는 대신, 전체의 구조가 드러났다.

버스는 부드럽게 움직였다. 몸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시선은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화면처럼 흘러갔다. 나는 그것을 따라가며, 어디에서 멈출 것인지 생각했다.


버스는 도시를 크게 돌았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건축물들이 하나의 리듬을 이루었다. 갑자기 시야에 들어온 콜로세움의 곡선. 그 거대한 형태는 가까이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주었다.

햇빛은 그 표면을 고르게 비추지 않았다. 일부는 밝게 드러났고, 일부는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명암 속에서 구조가 더 또렷해졌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형태란 결국 빛과 시간의 협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나가는 경기장의 흔적들, 낡은 벽들,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한 현대의 간판들. 서로 다른 시대의 것들이 어색하게 부딪히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로마는 과거를 유리관에 넣어두지 않는다. 과거를 그대로 호흡하게 둔다. 그래서 이곳의 시간은 멈춰 있지 않다. 계속해서 변화하고, 덧붙여지고, 다시 쓰인다.

나는 그 흐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역사는 기록되고 계속해서 생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것이 자라고, 사라진 흔적 위에 또 다른 이야기가 겹쳐진다.


버스는 여전히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고, 나는 그 위에서 시선을 옮기며 그 모든 층위를 따라가고 있었다. 몸 전체로 받아들이는 풍경. 그 흐름 속을, 아주 천천히,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아주 큰 고래가 도시를 유영하듯

나는 고래등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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