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을 나오며

by원성진 화가


바티칸을 떠나는 길에서, 나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걸음은 앞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자꾸 그곳에 머물렀다. 그곳은 시간이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고, 그 흐름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고 있었다. 인간이 남긴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다른 시대의 감각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방식. 그것이 바티칸이라는 공간이 가진 본질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장면들이 겹쳐 있었다.

돔 아래에서 올려다보았던 하늘, 어둠 속에서 떠오르던 빛, 말없이 모든 것을 품고 있던 대리석의 얼굴.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감각으로 남아 있었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피에타가 있었다. 그 장면은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느꼈던 감정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부러움이 있었고, 경외가 있었고, 어딘가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감각이 함께 있었다. 인간은 늘 넘어서고 싶어 한다. 더 잘하고 싶고, 더 깊이 도달하고 싶고, 더 완전해지고 싶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넘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때 느껴지는 감정은 좌절과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그 경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감각이 생긴다. 그것이 숭고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티칸을 벗어나 다시 도시의 공기 속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시 또렷해졌고, 발걸음의 속도도 조금씩 빨라졌다. 근처 식당 앞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었고, 그 기다림 속에서도 대화를 나누고, 웃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다리는거 죽어라 싫어하지만, 나는 그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갔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들어간 식당 따뜻했다.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은 심플했고, 맛 또한 특별하게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충분했다. 문어 요린데 아주 부드럽기는 했다. 하루 동안 채워진 감각들이 이 순간을 더 풍부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식당을 나와 다시 거리로 나왔을 때, 로마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빛이 달라져 있었다. 낮의 빛이 사물을 드러내는 빛이었다면, 이제는 감정을 감싸는 빛으로 변해 있었다. 거리의 조명은 건물의 표면을 따라 흐르고 있었고, 창문 안쪽에서는 따뜻한 색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공기 위에 가볍게 얹혀 있었고, 그 소리는 도시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연말의 공기였다. 어딘가 들떠 있으면서도, 동시에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조용한 감각이 함께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어디로 가야 한다는 생각 없이, 그저 발걸음이 닿는 대로. 돌바닥 위를 걷는 감각이 발끝에 전해졌다. 그 표면은 매끄럽지 않았고, 오랜 시간에 의해 조금씩 닳아 있었다. 그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선명해졌다. 이 길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걷고 있고, 또 이미 지나간 길이다. 그들의 시간 위에 지금 내가 겹쳐지고 있다.


로마는 현재의 도시이지만, 그 현재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는 모든 것들 아래에는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건물의 벽, 길의 표면, 공기의 냄새까지. 그 모든 것이 과거의 흔적을 품고 있다. 그 위를 걷는다. 동시에, 그 위에 또 다른 흔적을 남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일까?, 아니면 쌓이는 것일까?. 시간은 흘러간다. 지나가고, 사라지고, 돌아오지 않는 것. 로마 안에서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겹쳐지고, 쌓이고, 다른 형태로 계속 존재하는 것.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어딘가에 남아 있을까?누군가의 기억 속에, 혹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날의 로마는 짧았다.

시계로 측정하면 단 하루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하루는 단순한 길이로 설명되지 않았다. 하루라는 단위 안에 여러 층의 시간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과거를 통과했고, 현재를 감각했고, 어쩌면 아직 오지 않은 어떤 순간까지도 미리 스쳐 지나온 것 같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서 있었다. 도시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계속 지나가고 있었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아주 작은 하나의 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점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이 하루는 충분히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로마에서의 하루는 길다. 깊이의 문제다.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얼마나 많은 것을 느꼈는가?

그리고 그 감각들이 얼마나 오래 남아 있는가?

그날의 로마는 하루가 아니라 하나의 층이었다.

나는 그 층을 천천히 통과했고, 그 일부가 되어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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