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베드로 대성당

by원성진 화가


바티칸의 마지막은 정신못차린 가운데 비밀의 통로를 지나 성베드로 대성당으로 이어졌다.


거대한 문. 이쪽과 저쪽, 일상과 비일상, 인간의 시간과 다른 차원의 시간 사이를 가르는 문. 문을 통과하는 순간,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돔이 보였다. 시선이 올라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높았고, 그 안에는 무게감과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가벼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곡선은 인간이 ‘위’를 어떻게 상상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유였다. 위로 향한다는 것. 인간이 스스로를 넘어서고자 할 때 선택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미켈란젤로는 그 태도를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형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대성당의 중심에서 무언가가 단단히 서 있었다.

베르니니의 발다키노.

처음에는 그 크기에 압도되었고, 그다음에는 그 움직임에 놀랐다. 청동으로 이루어진 기둥은 분명 단단해야 했지만, 그 표면은 마치 천처럼 흐르고 있었다. 비틀린 듯 올라가는 기둥의 선은, 지금도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아래는 성베드로의 무덤.

그 위에 세워진 이 구조물은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축, 보이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표시.

나는 그 아래에 서서, 잠시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곳에서 인간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땅 위에 있지만, 늘 위를 향하고 있는 존재. 그 긴장 속에서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


대성당의 한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주했다.

피에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추고, 말을 멈추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앞에서는 소리가 필요 없었다. 대리석. 차갑고 단단한 물질. 그러나 그 안에서 드러난 형상은 이상할 정도로 따뜻했다.

성모의 무릎 위에 놓인 예수의 몸. 힘이 완전히 빠져 있었고, 어디에도 저항이 남아 있지 않았다.

죽음은 이렇게 고요한 것일까. 움직임이 사라진 상태, 모든 긴장이 풀린 상태. 그 정적이 오히려 더 큰 무게로 다가왔다.

성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슬픔이 있었다. 그러나 절망은 아니었다. 그 표정은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감정을 품고 있는 상태에 가까웠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이미 받아들인 듯한 얼굴. 나는 그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고통은 보통 파괴로 이어진다. 삶을 무너뜨리고, 감각을 닫게 만든다. 그런데 이 조각 안에서 고통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어떤 상태로 변해 있었다.

숭고함.

그것은 고통을 통과한 이후에만 도달할 수 있는 감각인지도 모른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인가. 혹은 이미 주어진 조건 속에서 그저 반응하고 있는 존재인가. 삶에는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설명할 수 없고,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들. 그 앞에서 우리는 무력해진다. 그러나 그 무력함 속에서 어떤 태도를 선택할 것인가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성모의 얼굴은 그 선택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대리석은 여전히 차가울 텐데, 왜 이 장면은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질까. 단단한 물질 속에서 이토록 부드러운 감각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어떤 인간이, 어떤 상태로 이 돌을 마주 했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대성당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돔, 발다키노, 피에타.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손길.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예술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였고, 동시에 그 메시지 자체였다. 신앙은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형태로 드러난다. 빛으로, 선으로, 질감으로. 그리고 그 감각은 논리보다 더 깊은 곳에 닿는다.


나는 대성당을 나서며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공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들어가기 전과 같은 장소로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를 통과해 나온 느낌. 바티칸에서의 하루는 끝났지만, 그 경험은 끝나지 않았다.

예술과 신앙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서로를 설명하고, 서로를 완성하고 있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지만, 그 유한함 속에서 끊임없이 무한을 향한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 시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신앙일지도 모른다.

밖으로 나왔을 때, 빛이 다시 현실의 온도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보았던 그 빛과 지금 이 거리의 빛은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딘가에서, 아주 미세하게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아마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시스티나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