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티나 성당

by원성진 화가

시스티나 성당의 문턱을 넘는 순간, 수많은 관람객들과 공간의 크기에 나는 본능적으로 걸음을 늦추었다. 들어간다기보다, 어떤 장면 안으로 스며드는 느낌에 가까웠다. 바깥의 빛은 문에서 끊겼고, 안쪽에는 전혀 다른 시간의 밀도가 흐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어디를 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시선이 바닥에 머물기도 전에, 이미 천장으로 끌려 올라가 있었다. 모두가 같은 자세였다. 고개를 젖힌 채,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떤 의식처럼 느껴졌다.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이 공간은 사람들의 몸을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다.

천장을 가득 채운 장면들.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장면과 장면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며, 시간 자체가 하나의 표면 위에 펼쳐져 있었다. 그 안에서 인간은 태어나고, 추락하고, 고통받고, 다시 일어난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사건들이 어딘가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

나는 한 장면에 집중하려 했지만, 곧 포기했다. 이곳은 한 부분만을 이해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전체를 감각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자세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목이 당기고, 시야가 흔들렸다.

그 불편함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위를 바라보는가? 위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니면, 그 방향이 이미 하나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일까?

인간은 늘 위를 향한다. 더 높은 곳, 더 먼 곳, 더 알 수 없는 곳. 그곳에 답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 답은 닿을 수 없는 거리 위에 머물러 있다.

그 간극.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조건인지도 모른다.


성당의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최후의 심판’.

천장의 이야기들이 흐름이라면, 이 장면은 멈춰 있는 폭발 같았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응축되어 있었다. 수많은 인물들이 뒤엉켜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혼란스럽지 않았다. 각자의 위치가 분명했고, 각자의 방향이 결정되어 있었다. 위로 올라가는 이들, 아래로 떨어지는 이들. 그 경계는 모호하지 않았다. 그 분명함이 오히려 더 불편했다. 중앙에 선 존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단호했다. 망설임이 없었다. 판단은 이미 끝난 상태처럼 보였다.

그 표정 앞에서, 나는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설명도, 변명도, 해석도 모두 무의미해지는 순간. 심판이란 그런 것일까. 이유를 묻지 않는 상태. 결과만 남는 상태.


주변의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어떤 얼굴은 평온했고, 어떤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몸은 뒤틀려 있었고, 손은 무언가를 붙잡으려 했고, 그러나 결국 놓쳐버린 듯 보였다. 그 표정들은 과장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직접적이었다. 고통은 고통 그대로, 절망은 절망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나는 그 얼굴들을 오래 바라보지 못했다. 그 감정들은 너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은 말하고 있었다.

선과 악, 구원과 타락. 그 경계는 어쩌면 수많은 시간의 축적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매 순간 선택한다. 작은 선택들이 쌓여, 결국 하나의 방향을 만든다. 그 방향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나는 그 앞에서 문득 생각했다. 만약 이 장면이 실제라면, 나는 어디에 서 있을까? 위로 올라가는 쪽인가, 아니면 아래로 떨어지는 쪽인가. 그 질문은 불편했다. 그러나 피할 수 없었다. 아마도 이 공간이 의도한 것도 바로 그것일 것이다.


신앙이란 무엇일까. 믿음이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확신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불확실함 속에서도 손을 놓지 않는 태도에서 오는 것일까.

신앙이 없는 나에게 시스티나 성당은 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남겼다.

그리고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 다른 순간마다 다시 떠오를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어떤 공간은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사유로 남는다.

그리고 그 사유는 조용히, 그러나 오래 사람 안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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