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심폐소생한 미술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

by김큐


#1992년 봄 산타모니카의 한 디자인 스튜디오

한 남성이 화려한 곡선이 강조된 건축물 모형 앞에 고민에 빠진 듯 서있다.

프랭크 게리이다. 그는 몇 년 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아 명성이 더 높아지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건물 모형은 스페인 바스크 주 정부가 의뢰한 빌바오 시를 살릴 랜드마크급 건축물이다.

"외관이 조금 더 반짝이고 살아 있는 듯했으면 좋겠어. 이걸로는 부족해. 그냥 죽어있는 건물 같단 말이지"


"소장님, 다른 외장 소재들이 마땅치 않다는 거 아시잖아요. 곡선이 이렇게 많은 건물의 외부를 다 덮을 수 있고 빛에도 반응하는 소재는 스테인리스가 최선입니다. 비용도 생각하셔야죠. 이게 제일 안정된 선택입니다."


"적당히!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게 문제라고!" 프랭크 게리가 벌컥 화를 낸다.

"빌바오는 철로 죽어간 도시라고. 그런데 그곳에 스테인리스로 뒤 덮인 건물을 세우자고? 마치 묘비를 강가에 세우는 것 같겠구먼. 이 건물에는 생명을 불어넣어 줄 뭔가가 필요하단 말이지. 떠올려 보게 살아있는 듯한 건물을 말이야. 마치 자연과 호흡하는 듯 해가 비치면 반짝이며 시간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하는 건물 말이지."


직원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예술성을 중시하는 프랭크 게리를 돈 따위로 설득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적이 흐른 것도 잠시 재무 담당직원이 문을 벌컥 열고 뛰어들어 온다.


"소 소 소장님!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어요. 티타늄이요. 티타늄!"

그는 프랭크 게리에게 들고 온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를 받아 든 크랭크 게리의 눈이 반짝인다. 서류엔 스테인리스와 티타늄 시세가 적혀있었다.


"이 가격이 정말인가? 티타늄이 이렇게 가격 빠졌다고? "

"네 소련 쪽에서 티타늄 매물을 시장에 막 쏟아내고 있다고 하네요. 어떡할까요? 사들일까요?"

"그걸 왜 묻고 있나?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네. 최대한 사들이게 예산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많이 사야 해!"


1991년 겨울, 소련은 경제 파탄과 정치 균열로 15개 독립국으로 해체됐다. 모스크바 크렘린 궁의 붉은 깃발이 내려가자 군수 산업도 힘을 잃었다. 소련 해체 직후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던 러시아는 당장 현금화가 가능한 전략 물자들도 내다 팔기 시작했고 티타늄도 예외는 아니었다.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의 티타늄의 행운은 이렇게 찾아왔다.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

스페인 북부 바스크주 빌바오시를 관통하는 네르비온(Nervión) 강변에 위치한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은 4년여 공사기간을 거쳐 1997년 10월 개관했다. 은빛 소라 껍데기 같은 모양의 건물은 외부가 3만 개가 넘는 얇은 티타늄 패널로 덮여있다. 바람이 불면 사락사락 소리가 나고 날씨에 따라 티타늄은 다른 빛을 반사해 건물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꾼다. 흐린 날에 은빛 비늘이 반짝이는 커다란 물고기가 강변으로 올라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해 질 녘엔 황금빛으로 물든 신비한 건물로 바뀐다. 직선을 찾아보기 힘든 건물 자체가 전시물인 것 같은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은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작품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 스터디 모형(출처:빌바오구겐하임 뮤지엄 홈페이지)

건축학계에서는 이 건물을 '해체주의 건축의 정수'라고 평가한다. 해체주의라는 근사한 말 때문에 긴장했다면 걱정하지 말자. 기존 질서를 파괴한 건축 디자인 정도로 이해하면 되니 말이다. 레고블록을 떠올려도 좋다. 레고 블록으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네모 반듯한 빌딩을 하나 만들고 산산조각 낸 후 기존 규칙들을 무시하고 완전히 새로운 건물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바로 해체주의다. 프랭크 게리는 곡면과 곡선을 살려 마치 바람에 펄럭이는 비단처럼 보이는 건물을 만들어냈다. 수직, 수평, 직각은 물론 대칭도 이 건물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건물의 중심을 담당하는 50m 높이의 아트리움은 티타늄이 아닌 곡면의 유리창이 사용됐다. 그래서 개방감이 살아있고 웅장함도 느낄 수 있다. 각 전시실의 동선은 이곳 아트리움으로 모이도록 설계됐다.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은 건물과 외부의 경계가 모호하다. 미술관의 한쪽 날개는 주변의 다리(라 살베(La Salve)) 하부와 연결된다. 외부의 산바카라로 역시 강변과 광장의 경계가 모호하다. 분절되지 않은 이런 공간의 연속성은 박물관 내부의 전시된 것만이 예술품이 아니라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라는 의도를 품고 있다.


기반산업 붕괴와 대홍수로 죽어가던 도시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 건설 현장(출처: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 홈페이지)

빌바오는 한 때 스페인의 공업수도라 불렸다. 북대서양과 연결되는 네르비온 강이 도시를 관통하고 주변엔 풍부한 철광석이 있어 제철과 조선업 등이 흥했다. 하지만 1970~1980년대에 들어서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부상하며 쇠퇴의 길을 걷는다. 네르비온 강 주변의 수많은 조선소와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폐공장이 즐비하고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 오염된 강변지역은 슬럼화가 진행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83년 여름엔 빌바오 지역에 큰 홍수가 발생했다. 하루 500mm 이상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며 빌바오 시가지가 5m 깊이의 물에 잠길 정도의 피해가 발생했다. 1985년 빌바오의 실업률은 25%를 넘었고, 특히 25세 이하 청년 실업률은 54%를 웃돌게 된다.


Bilbao Effect(빌바오 효과)

도시 대전환 전후 (출처:빌바오리아 2000 홈페이지)

상징적 건축물 하나가 도시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고 경제까지 살리는 현상을 일컬어 '빌바오 효과'라고 한다.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으로 대표되는 빌바오의 도시 재건 프로젝트 성공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빌바오는 전통 제조업으로 도시 재생이 힘들다는 걸 직시하고 '문화, 관광,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중심 도시'로의 대전환을 시도해 성공했다. 기반 산업이 붕괴되던 중 대홍수가 겹친 게 도시재생의 결정적 분기점이 됐다는 게 흥미롭다. 네르비온강이 범람해 강변에 밀집돼 있던 조선소와 공장들이 모조리 침수됐고 정치권과 시민들은 이미 경쟁력을 잃은 이들을 복구하는데 천문학적 돈을 쓰는 것보다 도시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야 한다는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1989년 '빌바오 광역 마스터플랜'이라는 큰 그림이 그려졌고, 1991년 이를 현실화할 전략을 만들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이라는 민관학 연합의 싱크탱크가 출범한다. 1년 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50대 50의 구조로 출자한 '빌바오 리아(Bilbao Ria) 2000'이라는 비영리 특수 공사를 설립해 단계적으로 계획을 실현했다. 빌바오 광역 마스터플랜의 핵심은 쇠퇴한 중공업 도시의 체질을 지식·문화·서비스 도시로 바꾸는 것으로, 3대 거점 지구와 4대 핵심 인프라 구축이 골자였다. 그중에서도 폐공장들이 즐비한 도심 네르비온강 주변을 문화·비즈니스 중심지로 바꾸는 아반도이바라(Abandoibarra) 존이 핵심이었고 그중에서도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이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개관 3년 만에 투자금 전액 회수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을 짓는데만 약 1억 달러가 투입됐다. 구겐하임 브랜드 사용료와 미술품 구입비 등을 포함한 총투입비는 2억 3,000만 달러이다. 비슷한 시기 건립된 파리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의 건축비 7,500만 달러(1989년)의 3배가량이 들었고, 당시 빌바오 시 연간 예산에 맞먹는 돈이 들어갔다. 반대도 많았다. 성공이 담보되지 않은, 그것도 미국 미술관에 왜 돈을 퍼부어야 하냐는 주장이 나왔고, 지역 예술가들은 문화적 식민지가 되는 것이라며 반대 시위도 벌였다. 하지만 1997년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이 개관하고 3년 간 무려 40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몰려왔다. 빌바오시는 3년 만에 투자금을 모두 회수했다.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이 개관 25주년이었던 지난 2022년 밝힌 누적 방문자는 수는 무려 2,470만 명이다. 바스크주 통계청(EUSTAT) 자료에 따르면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의 인근 지역 GDP 기여액은 연간 약 3억~3억 4,000만 유로이다. 빌바오시가 한 해 동안 거둬들이는 세금이 4,000만~5,000만 유로 수준이니 박물관 파워가 실감 난다.


티타튬의 행운과 라팔 전투기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혁신적 디자인이 현실화되는 데는 뜻하지 않은 행운도 따랐다. 당시 스테인리스로 외부를 덮으려던 계획이 갑작스러운 티타늄 가격의 폭락이라는 호재를 맞았으니 말이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끝나자 미국과 소련의 군비 경쟁이 사라졌다. 또 소련 붕괴 후 경제 위기에 직면한 러시아는 돈을 벌기 위해 돈 되는 전략물자 티타늄을 마구 내다 팔았다. 수요는 크게 준 상태에서 공급이 쏟아지니 티타늄 가격은 폭락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 1kg 당 12 달러 선이던 티타늄 가격은 빌바오시가 구겐하임 뮤지엄을 한창 짓던 1993년~1994년 kg당 7.4달러까지 떨어졌다. 구겐하임 뮤지엄 외부엔 0.3mm의 얇은 티타늄 패널이 총 3만 3000장이 쓰였는데, 이때 모두 사들인 것이다.

전투기 디자인 소프트웨어 'CATIA' (출처: 다쏘시스템 홈페이지)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프랭크 게리의 해체주의적 디자인을 실현시키기 위해 전투기 디자인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곡선과 곡면을 현실화하는데 어려움을 겪자 수소문 끝에 프랑스 라팔 전투기를 만든 다쏘사의 카티아(CATIA) 소프트웨어를 받아들였다. 3만 3,000장의 불규칙한 티타늄 패널을 카티아를 활용해 계산했고 오차 없는 재단과 시공으로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빌바오 프로젝트는 세계 건축계에 3D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빅 푸시 이론(Big Push Theory)

빌바오 프로젝트는 개발 경제학의 빅 푸시 이론을 뒷 받침하는 훌륭한 사례이다. 낙후되거나 쇠퇴한 경제 구조를 탈피하려면 자잘한 보조금이나 단계적 투자가 아닌 대규모 투자를 일시에 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이론이다. 특히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은 같은 핵심 앵커 시설이 중요한데, 이 앵커 시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간접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은 단순히 미술관 관람 수익뿐 아니라 호텔과 주변 상가는 물론 교통과 지자체의 세수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외부효과를 창출한다. 다만 막대한 돈을 투입해 근사한 건물만 지어두면 도시가 저절로 살아날 것이라는 착각을 해서도 안된다. 스페인에서는 빌바오 사례에서 자극을 받아 지자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번듯한 건물 짓기 프로젝트들에 나섰다 큰 실패를 맛봤다.

갈라시아 문화도시 전경 (출처:구글 맵)

대표사례가 1999년 갈리시아 주정부가 산티아고 순례길로 유명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추진한 '갈라시아 문화도시' 프로젝트이다. 국제 공모전으로 미국의 스타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을 선정하고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 같은 앵커 건물로 가요스 센터(Centro Gaiás) 등 6개의 대형 문화·학술 시설이 포함된 초대형 복합단지를 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초 1억 유로로 바카라정했던 예산은 4억 7,500만 유로로 폭증했고, 2008년 금융위기까지 닥치자 2013년 미완공 상태로 영구 중단돼 애물단지가 됐다. 스타 건축가+파격적 건축물+문화시설=경제대박이라는 공식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빌바오의 겉모습만 따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장기플랜과 민관학이 협력한 싱크탱크 그리고 독립된 공사형태의 실행기관 등 삼박자를 갖춘 사업구조나 전반적인 도시 인프라의 개선 여기에 독창적인 콘텐츠까지 가세한 빌바오 프로젝트의 진짜 성공비결을 간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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