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와 일본 자산버블이 만든 역효과
제2의 진주만 기습
일본의 미쓰비시 지쇼 부동산 그룹은 1989년 미국 록펠러 그룹의 지분 51%를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한다. 이후 1991년까지 이들의 지분율은 80%까지 높아졌다. 이 거래는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일본이 미국의 영혼을 사버렸다' 거나 '제2의 진주만 기습'이라며 흥분했다. 록펠러 그룹이 소유한 뉴욕 중심가의 록펠러 센터는 미국인들의 정서적 고향 같은 곳이다. 우리로 치면 광화문 광장 같은 곳이랄까. 많은 미국인들이 연말 하면 록펠러 센터의 대형 트리와 그 앞 광장의 스케이트 장을 떠올리곤 하니 말이다. 이런 곳을 2차 세계대전 때 적국이었던 일본이, 그것도 자본시장의 심장으로 불리는 뉴욕의 가장 상징적인 건물을 돈으로 사들였으니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하다.
플라자 합의가 만들어낸 일본자금의 역습
이런 일본 자금의 미국 부동산 시장 습격은 플라자 합의라는 역사적 이벤트와 관련이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며 미국은 재정과 무역의 쌍둥이 적자에 허덕였다. 특히 일본과의 무역 적자는 심각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들고 나온 게 인위적 환율 조정이다. 1985년 미국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재무장관을 뉴욕의 플라자호텔로 불러들여 달러 가치는 낮추고 일본(엔화)과 독일(마르크)의 화폐 가치를 높이는 합의를 만들어낸다. 이게 바로 플라자 합의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세상은 결국 힘의 논리로 돌아간다. 40년이 흐름 지금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다만 환율이 아닌 관세로 미국은 자신들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겠다고 나서는 게 다를 뿐이다.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는 힘을 잃고 속절이 가치가 하락한다. 1달러에 240엔 대였던 엔화가 1년 뒤 120엔 대까지 내려갔고 일본 수출기업들은 비명을 질렀다. 일본 정부가 꺼낸 대응바카라은 초저금리 정바카라이다. 힘들어진 기업들이 싼 값에 돈을 빌려 버틸 수 있게 해줬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풀려나간 돈은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대거 유입되고 엄청난 자산 버블을 만들어 낸다. 부동산 재벌이 등장했고 이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일본을 넘어 미국 부동산을 쇼핑했다. 자신들이 소유한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끊임없이 올랐고 이걸 담보로 저리에 대출을 받으면, 엔고를 활용해 달러로 바꿔 얼마든지 미국 주요 부동산을 사들일 수 있었다. 일본 사람들 입장에선 이 시기 미국 부동산은 마치 빅세일 기간에 들어간 것과 다름 없었다. 환율 효과로 불과 1년전 보다 50%나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록펠러센터,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엑손 빌딩, ABC 빌딩 등 뉴욕의 주요 상업용 부동산 빌딩이 줄줄이 일본인의 손에 넘어갔다. 실제 1980년대 후반 뉴욕 상업용 부동산의 30~40%는 일본 자본의 소유였다.
트로피가 피눈물로... 썰물처럼 빠진 일본자금
1990년대 초, 일본 정부가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자 상황이 급변한다. 일본 내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부동산을 담보로 거액의 자금을 빌려줬던 은행들이 부실화되기 시작했고, 이들이 자금 회수에 나서자 채무자들은 돈을 갚기 위해 부동산을 팔아대기 시작했다. 매물이 쌓이자 가격이 급락하고 헐값에 파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악순환 고리에 빠진다. 트로피처럼 사들였던 미국의 주요 빌딩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 자금은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실제 록펠러그룹을 사들여 록펠러 센터를 소유했던 미쓰비시 지쇼도 본사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버티고 버티다 1995년 록펠러센터를 관리하던 자회사들의 파산 신청을 한다. 회생을 위해 결국 록펠러 센터 12개 동의 소유권을 채권자에게 넘기고 13억 달러의 채무를 탕감받았다. 이들이 넘긴 건물에는 GE빌딩과 라디오시티 뮤직홀 등이 포함돼 있었다. 미쓰비시 지쇼가 록펠러 그룹의 지분 80%를 소유하기 위해 투자한 돈은 총 13억 7,300만 달러. 운영 손실과 이자 여기에 파산보호 신청 등으로 12개 빌딩의 소유권을 넘겨준 것 등을 포함하면 이 과정에서 본 손실이 10억 달러(당시 환율로 1조 원 이상)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당시 뉴욕의 HBO 본사 빌딩도 일본 자금의 소유였다. 소유주는 초밥체인점인 교타로(Kyotaru)였는데, 1990년 이 3억 2.500만 달러에 이 건물을 사들였다. 놀랍지 않은가? 초밥 팔아서 뉴욕의 주요 부동산을 사들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5년 뒤 교타로는 파산위기에 처하자 5,000만 달러에 이 건물을 매각했다. 뉴욕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골프 리조트 캘리포니아의 페블비치는 일본의 부동산 사업가 이수타니 미노루의 소유였는데, 1990년 8억 4.000만 달러에 이 골프 리조트를 사들인 이수타니 미노루는 2년 만에 자금난에 봉착해 5억 달러에 매각하고 손을 뗐다.
일본자금의 공백을 메운 리츠(REITs)와 벌처펀드(Vulture Funds)
일본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미국 부동산 시장도 침체에 빠진다. 주요 부동산을 도망치듯 헐 값에 팔아버렸으니 가격은 폭락했고, 이들에게 대출을 해줬던 미국 금융사들도 어려움에 빠진다. 하지만 가격의 하락은 새로운 매수세력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거대 자본에 밀려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었던 리츠(REITs)가 재부상 했다. 리츠는 개인들의 소액 투자금을 모아 대형 부동산에 투자하는 부동산투자신탁 상품이다. 사모펀드들도 헐값이 된 대형 부동산 매물들에 눈독을 들였는데, 부실자산을 인수해 시장 상황이 좋아지면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벌처펀드(Vulture Funds) 조성해 뛰어들었다. 블랙스톤(Blackstone)과 스타우드(Starwood) 같은 회사들이 이때 벌처펀드를 만들어 10년 뒤 큰돈을 벌었다. 이들은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로 성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일본자금 때문에 미국은 잠시 자존심의 상처를 입었지만 돈 많은 개인과 대형 기관 자본에 의지하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금융상품 중심의 시스템 금융으로 한 단계 진화시키는 계기가 된 셈이다.
사무라이 머니가 떠난 후 밀려든 차이나 머니
2000년대 들어서자 미국 부동산 시장에 차이나 머니가 급격히 유입된다. 경제성장을 등에 업은 중국의 부자들이 미국의 주택과 상업용 부동산 시장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흔들리며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하자 보험사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기관 자금의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 유입이 본격화된다. 2010년 중반에 다다르자 중국은 미국 부동산 시장의 최대 외국인 투자국이 됐고, 2016년 한 해 동안만 약 270억 달러, 우리 돈으로 30조 원에 달하는 자금이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들어왔다.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안방보험이 사들였고, 245 파크 에비뉴는 HNA(하이난항공) 그룹이, 원체이스 맨해튼 플라자는 푸싱그룹의 소유자가 된다.
하지만 차이나 머니도 결국 일본 자금처럼 도망치 듯 미국 시장을 떠나게되는데, 그 배경은 일본과는 사뭇 달랐다. 중국 정부의 정바카라 변화, 다시말해 일종의 정치리스크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는 2017년에 들어서자 해외로의 자본 유출을 엄격히 통제한다. 이른바 '회색 코뿔소'로 지목된 5대 금융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서이다. '회색 코뿔소'는 경제나 슬롯 전반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발생 가능성도 높지만, 사람들이 설마 하며 무시하고 간과하는 위험을 말한다. 저 멀리 몸집이 거대한 코뿔소가 달려오는데 그걸 보고도 기세에 압도돼 얼어붙어 있거나 설마 나한테 오겠어라는 생각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당시 안방보험, HNA, 완다그룹 등이 그림자 금융과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한 해외투자의 주범으로 지목됐고, 이들은 사실상 강제 해산 절차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 이들이 보유한 미국 부동산은 정부가 정한 기한 내에 무조건 매각되야 했다. 팔 수 밖에 없는 자산이니 좋은 가격을 받을리 만무하다. 중국 자본의 미국 부동산 시장 유입과 철수는 국가 자본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