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것은
[마침 저희 옥상에 지지대 없는 휘청토마토가 있어서 댓글 남기고 갑니다.]
내가 남긴 댓글에 블로거는 토마토 농사(!)를 짓는 또래를 처음 봤다며 반가워 했고, 그의 엄청난 친화력과 관대함 덕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희귀 토마토 모종 몇 개를 선물로 받게 되었다.
희귀 토마토 모종을 나눠주기 위해 남자친구의 차를 타고 우리집으로 온 그는 “인터넷으로 알게 된 사람을 직접 만나러 가다니 너무 위험한 것 아니냐”는 남자친구에게 “토마토 키우는 사람이라면 나랑 똑같을 것”이라며 안심시켰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줄 답례로 잭프룻 모종과 쿠카멜론 모종, 보이차 몇 알을 준비했다가 커플이 오자마자 바리바리 싸들고 나가서 마중했다.
벌써 어둑어둑해진 밤에 노란 가로등이 켜진 빌라 옆에다 주차를 해놓고 복닥복닥 내려서 환하게 인사하는 두 사람이 왠지 호감이였다. 양 손 가득 토마토 모종을 꺼내서 건네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저희 집 옥상 텃밭에서 제가 키우는 토마토들 보실래요?"
후에 알았지만 토마토 보여주게 옥상으로 따라오라는 말에 남자친구는 “정말 너랑 똑같은 사람이다” 하며 안심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언니는 나를 토마토 친구, 줄여서 토친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다다음날 한낮에 요상한 분위기의 밥집에서 언니를 또 만나서 열두시간동안 놀았다. 어떻게 거의 처음 본 사람이랑 그렇게 오랫동안 수다를 떨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왠지 대화가 잘통했고 언니는 재밌는 이야깃거리를 쉬지않고 꺼냈다. 언니가 새 친구를 사귀면 꼭 놀러가는 곳이라며 친구의 가죽공방 작업실에도 갔다가, 커피도 마시고 산바카라하다가 또 밥을 먹고 술도 마시고 밤에는 각자의 남자친구도 데려와서 넷이 놀았다.
언니는 주량이 나랑 똑같이 한병이라 했지만 내가 기억을 잃을 때까지 언니는 멀쩡했다. 나는 술마시며 했던 대화내용의 많은 부분을 까먹었고 다음날 새벽에 나는 오랜만에 겪는 엄청난 숙취에 힘겨워하며 야쿠르트를 배달했다. (너무 힘든 나머지 포카리스웨트 한캔을 원샷하고 전에 없던 정신력으로 초고효율 루트를 발견해서 평소보다 빠르게 배달을 마쳤다)
그래서 우리의 토마토 농사는 풍작을 거뒀을까?
나는 여름내내 수도꼭지도 호스도 없는 옥상에서 72그루 물 시중을 했다. 폭우때는 화분마다 천일염을 한스푼씩 뿌려주고 옥상 안으로 피신시켰다가 폭염때는 20L짜리 양동이에 물을 가득채워 어기적어기적 들고 올라가 물을 부어주기를 여섯번 정도 반복했다. 텃밭을 보러 가면 시간이 훌쩍 가버렸고 옥상은 그냥 바깥온도보다 뜨거워서 어느날은 온도계에 50도가 넘는 온도가 찍혀있었다.(!)
그렇게 공을 들여도 어느날 보면 꽃무지같은 생전 처음보는 벌레들이 드글드글 몰려와 빨갛게 익다못해 터진 토마토를 먹고있었다.
언니는 나랑 만나고 몇주후에 갑자기 프러포즈를 받아 갑자기 신혼집 계약을 하느라고 이사를 가서 토마토 열매를 많이 못 봤다고 했다.
나도 갑자기 이사를 나가게 돼서 흙은 다른 도시농부에게 전부 나눠주고 무성하게 자란 토마토 줄기를 북북 뽑아 마대자루에 넣고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며칠 전에 쓴 글을 읽은 리빈이가 영상통화 중에 물었다.
- 그래서 너는 뭐가 그 차를 그 차로 만든다고 생각해? 결론이 나왔어?
- 그거? 내 결론은…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한건 없다는 거야. 내가 생각하는 대상은 내가 겪은만큼밖에 모르고, 지나간 것은 기억속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해.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나는 그것의 본질을 평생 알수 없고……
그렇게 말하다 잠시 멈추고 화면속의 리빈이를 바라봤다.
어느정도 예측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영원한 건 없다는 사실 뿐이지만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믿고 산다. 그 믿음 없이는 삶이 너무 퍽퍽하니까
나부터도 열정이 식어지고 분별력이 흐려지고 기억이 흩어져가면서도 어떤 것은 변하지않을거라는 희망을 가지면 조금 더 행복하다는 것…….. 아니면 삶은 그렇게도 예측할 수 없는 것 투성이지만 그래서 마음놓고 그걸 즐겨도 좋다는 것.
그 두가지 생각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