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72그루 (1)

뭐든지 다 변해버리는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 찾기

by김지연

점점 추워지는 날씨가 무서워 서둘러 자전거 여행을 끝내고 귀국했을 땐 가을의 한가운데였다. 리빈이와 함께 한국에 한동안 머무르기로 했다.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다가 원래 리빈이가 목표했던 일본까지 가볼까도 했지만 집에 오니 다시 고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나그네 생활(?)을 하는동안 못했던 텃밭도 작게 만들어보고, 집을 비웠던 시간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났다. 대부분은 어제 만난 것처럼 그대로였지만 몇몇은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사랑하던 그 때 그 사람들은 아예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는 것 같았다. 앞으로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싶은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갈 때 나는 나를 의심했다.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변한 걸까?


유튜브를 보다가 노화를 막는 신약이 나올 거라는 얘기가 나왔다. 비중있는 이야기는 아니였는데 시간이 지나도 이상하게 며칠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시 젊어지기는 어려워도 슬로우 에이징을 통해서 우리는 좀 더 오래 살고 어쩌면 영생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질지도 모른다. 약이 개발되는 시점에 내 나이가 몇 살인지가 중요해지려나? 어떤 사람들은 삼십대의 모습으로 어떤 사람들은 사십대의 모습으로 삶을 오래오래 이어 간다고 생각해 보자. 자동차처럼 연식이 중요해질 수도 있겠다.


자동차는 영생할 수 없을까? 기술이 인간의 수명을 거의 언리미티드에 가깝게 연장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면 물건도 일찌감치 오랫동안 쓸 수 있도록 발전해야 되는 거 아닌가.


모든 부품을 모듈화 해서 필요한 부분만 고쳐가며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게 개조를 했다고 치자. 그럼 사람들이 낡은 자동차를 고쳐서 오래 탈까? 글쎄 뭔가가 질려서 차를 바꾸고 싶어 할 테지. 내연기관을 전기로 바꾸고 싶어서, 다른 인터페이스를 경험해 보고 싶어서, 외관이 다른 걸 사용하고 싶어서, 그냥 새 차를 사고 싶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차를 바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을 차치하고서 차를 아예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망가진 부품을 하나씩 고쳐나간다면 그 차가 영생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부품을 계속 교체해서 결국 처음 생산했을 때의 부품이 아예 남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이 자동차가 그 자동차라고 볼 수 있나?


그 자동차를 그 자동차로 만드는 건 뭘까? 외관? 브랜드? 헤리티지? 주인의 추억?

한 사람을 그 사람으로 만드는 건?


나인지 타인인지 아무튼 인간이 예측할 수 없이 다이나믹하게 바뀌어갈 때 쯤 다이소에서 사서 심은 토마토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더니 어느새 열매를 맺었다. 토마토만큼은 뭐든지 다 변해버리는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머릿 속 논리적 비약이 극에 달할 때 쯤 나는 아예 72구 짜리 모종판을 사서 토마토 씨를 뿌렸다. 신토불이 한국 토마토 씨들은 놀랍게도 100퍼센트의 발아율로 싹이 트고 눈깜짝 할 사이에 한 뼘 두 뼘 성장했다. 72개의 토마토 모종이 생긴 나는 각 나무에서 토마토가 5개씩만 나도 360개의 토마토를 먹을 수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기쁘기도 하고 벌써 질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쨌든 착실히 열매 맺을 토마토들을 기대하면서 마음에 안정을 찾았다. (물론 나중에 토마토 농사마저도 예측 절대 불가능한 범위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나는 매일 속으로 열매가 맺히지도 않은 토마토를 생각하다 생각하다 내가 갖지 못한 알록달록한 토마토 종자의 이름이 궁금해지고 대저토마토, 찰토마토, 흑토마토 같은 것들은 또 어떻게 다른지가 궁금해져서 매일 밤 각종 토마토의 원산지와 재배환경을 검색해서 읽다 잠들곤했다.


그러던 어느날은 로에베의 울퉁불퉁하고 멋진 호박같은 토마토는 어떤 품종인지가 궁금했다. 찾아보니 그것은 에어룸 토마토라고 불리는 희귀 품종 토마토들이었다. 판매하는 곳이 온라인에 딱 한 군데 있었고 나는 거기를 며칠을 들락거리며 씨앗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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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립에 삼천원 하던 흔한 토마토와는 달리, 귀한 토마토 씨앗은 5립에 구천원이나 했다. 나는 특이한 토마토 한개가 아니라 알록달록한 여러가지 토마토를 원했기 때문에 구매하게 되면 최소 3~4가지는 구매하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씨앗만으로도 너무 비싸기도 했지만, 후속적으로 모종 하나 당 화분이니 흙이니 하는 것들을 구비할 생각만 해도 너무나 아찔해서 그냥 혼자 가장 예쁜 종자의 이름을 검색해서 구경하고 있었다.


꾸와르 디 브에, 버미스 싸워, 꼬스또루또 피오렌티노, 오자끄 선라이즈… 이런 이름부터 엘레강스한 녀석들을 내가, 답십리 우리집 옥상에서, 바로커 상토가 담긴 다이소 화분에 뿌리면... 잘 자라긴 할까? 궁금해서 찾고 또 찾았다. 그러다 우연히 이틀전에 씨를 심은 사람의 블로그를 발견한다.


내가 궁금했던 종자를 모조리 사고 서비스 씨앗까지 20가지 넘게 받은 그 사람은,

며칠전에 씨앗을 심었다! 또 다음날은 씨앗을 암발아 해주려고 덮어놨다!ㅋㅋ 여행가는 동안 말라버릴까봐 걱정된다ㅠㅠ 또 다음날은 싹이 몇개 났다!^^ 또 다음날은 싹이 몇 개 녹았다!ㅠㅠ 하며 매일매일 토마토들의 작은 변화를 기록하면서 기뻐하거나 슬퍼하고 있었다. 내가 심지 않았지만 내가 심은 것처럼 꼭 하루에 한번씩은 소식이 궁금했다. 역시 토마토맘의 마음이란 비슷한건지, 블로그에는 내가 직접 보는 것 보다 더 세심한 시각으로 적은 내용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매일 그 블로그를 들락거리며 더 올라올 소식들을 기다렸다.


나도 토마토, 가지, 바질, 루꼴라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 사람도 그것들을 똑같이 키우고 있었던데다가 작물들에게 토가바루라는 귀여운 별명까지 붙여 불러주고 있었다. 뭐야, 토가바루? …귀엽잖아? 내적 친밀감을 넘어서 이 블로거의 사랑스러운 시선이 부럽다고 느껴질 때 쯤이었다.


블로거는 조금 키가 커진 토마토에 지지대를 세워줄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작년에 키운 방울토마토 딱 한 그루로 온가족이 먹고 또 이웃집과 온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줘도 남도록 풍작을 거두셨다는 아버지가 지지대 없이 자빠진 채로 키워야 튼튼하게 자란다고 했지만, 인터넷에서는 아무도 지지대 없이 토마토 키운 이야기를 쓰지 않아서 그 말의 신빙성이 의심된다고 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는 72개의 토마토가 있었지만 지지대를 72개를 사지는 못했다. 땅을 기어다니는 꼬부랑 토마토가 몇 그루 있었고, 사진 댓글을 달게 된다.


[마침 저희 옥상에 지지대 없는 휘청토마토가 있어서 댓글 남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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