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가 너무 해

옆집과 우리 집의 열무

by화이트

옆집이 올해 처음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옆집의 농작물이 십 년 경력의 우리 집 텃밭 보다 작황이 훨씬 좋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옆집이 작년에 집을 짓고 초보의 텃밭이다 보니 온 동네의 이웃들이 나서서 도와주는 형편에다가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햇빛과 통풍이었다.


우리 집은 십 년 동안 자란 화살나무 울타리로 밭에 그늘이 드리우고 바람이 통하지 않는데 비해 옆집은 낮은 돌담 너머로 지는 햇살까지 아낌없이 텃밭을 비추다 보니 쌈채소와 열무와 얼갈이가 오일장에 내다 팔아도 될 정도로 실하게 크기 시작했다. 상추나 열무는 거름을 많이 필요하지 않다 보니 생땅의 옆집 텃밭에 약간의 거름만 줬을 뿐인데도 햇살과 바람으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럴 수가! 옆집의 시퍼렇게 굵은 열무와 우리 집의 여리디 여린 열무를 비교해 보니 '자식은 내 자식이 예쁘고 농사는 남의 것이 예쁘다.'는 속담처럼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물론 고추나 오이, 가지, 옥수수 같은 작물은 거름이 풍부한 우리 집의 텃밭이 훨씬 잘 자란다.


작은 열무와 얼갈이를 수확해 벌써 두 번의 김치를 담가 여름 밥상을 채우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따도 일주일이면 그대로 자라나는 상추는 이웃들에게 부지런히 인심을 쓸 수 있는 나눔 대표 작물이다. 보리밥에 상추쌈을 해서 열무 물김치와 먹으면 여름철에 다른 반찬이 필요하지 않다. 거기에 잘라도 금방 자라 있는 부추에 건보리새우와 방아잎을 넣어 전을 부치면 고기반찬 없이도 근사한 밥상이 된다.


옆집의 부부는 차분하고 점잖은 사람들이라 이웃이 없을 때보다 시골 생활이 다채롭다. 얼마 전에 있던 일이다. 앞집 어르신이 어둑어둑한 저녁 무렵에 키우신 배추를 두 포기씩 나누어 주셨는데 어둠 속에 앉아 있던 나는 옆집 동료가 배추를 받으며 인사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유~ 뭘 이렇게 많이 주세요. 감사합니다. 잘 먹을 게요."라며 콧소리를 섞어 반색하는 말을 들으니 어르신이 주는 맛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가 괜히 승진한 게 아니라는 주변의 말처럼 인사를 깍듯하게 챙기고 처세술이 나무랄 데 없다.


앞집 어르신은 이웃들의 과일나무마다 전지를 하고 약을 쳐주시는데 이렇게 농작물이나 과일도 가끔 나누어 주신다. 여든인 연세에도 먼저 베푸시고 인자하게 가르쳐 주시니 우리는 농약값을 드리고 어르신의 집이 동네 분들이 모이는 다방이라 커피 믹스를 대용량으로 사다 드렸다.


옆집의 열무와 얼갈이를 비교하면 우리 집이 어쩐지 의문의 실패를 한 것 같아도 대신 쌈채소가 여리고 작아 훨씬 우리 집 것이 부드럽다고 우겨본다. 딸과 내가 일주일 동안 먹어야 하니 사실 나눌 것이 충분하지 않아 시골 이웃의 상추를 뜯어가서 서울에 있는 이웃들에게 나눠준다. 시골 이웃들의 쌈채소는 큼직하지만 마트에서 산 상추보다 싱싱하고 아삭아삭하니까 출처는 중요하지 않다.


옆집 동료는 상추와 쌈채소를 뜨거운 오후에 한 장 한 장 뜯는 것도, 골고루 소분해서 싸는 것도, 나누어 주는 것도 힘들어서 내년에는 대폭 줄여야겠다고 한다. 나는 나누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상추가 모자라서 더 늘여야 할 형편인데 수확량에서 이렇게 차이가 난다.


햇살과 바람이 욕심나지만 그렇다고 잘 키워서 손질한 화살나무 울타리를 뽑을 순 없고 내년에도 옆집의 시퍼런 열무와 배추만 한 얼갈이를 보며 오일장에 내다 팔아도 되겠다는 타령이나 계속할 수밖에 없다.


빨간 고추를 넣지 않은 건 딸에게 줄 열무 김치
앞집 어르신이 주신 노란 봉지로 복숭아를 적과하고 씌웠다.
살몬색 장미와 묶인 건 향플록스, 끈끈이대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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