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바나 더 밴드' 영화이자 또 다른 발명

기발하고 엉뚱한 기행과 소동에 담긴 속 깊은 진심, '너바나 더 밴드'.

by민용준

<너바나 더 밴드: 전설적 밴드 ‘너바나’와는 별 관련 없는 ‘너바나 더 밴드’의 콤비 맷과 제이. 어느 날 공연을 위해 타임머신을 만드는 황당한 작전을 세우고 처음 만났던 17년 전으로 돌>(이하, <너바나 더 밴드>)의 원제는 <너바나 더 밴드 더 쇼 더 무비(Nirvana the Band the show the movie)>다. 이례적으로 긴 국내 개봉명은 국내 관객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캐나다 영화에 대중적인 화제성을 불어넣기 위한 수입사의 묘바카라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불미스러운 오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방바카라 같기도 하다. <너바나 더 밴드>는 부제에서 명시하듯 전설적인 밴드 ‘너바나’와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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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바나 더 밴드>는 ‘너바나 더 밴드’라는 무명 밴드의 멤버이자 오랜 절친인 맷(맷 존슨)과 제이(제이 맥캐럴)가 토론토의 유명한 라이브 클럽이자 레스토랑인 ‘리볼리’에서 공연을 하겠다는 목표로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기상천외한 사건을 그린다. 그저 공연을 하겠다는 집념만 보일 뿐, 제대로 된 음악적 자질이 있기나 한 것인지 알 길이 없는 너바나 더 밴드의 두 멤버는 엉뚱하지만 실행력만큼은 ‘만렙’인 맷의 주도로 기행에 가까운 계획을 낙천적으로 강행하며 한심해 보일 법한 소동을 거듭 일으킨다.


예정에 없는 공연이지만 홍보 전단지를 붙이면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계획은 당연히 실패했는지 17년이 지난 이후에도 밴드의 사정은 딱히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맷의 실행력과 기행력도 여전하다. 그는 토론토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CN타워 전망대에 자리한 실외 보행 체험로 ‘에지워크’에서 안전줄을 끊고 뛰어내린 뒤 낙하산을 펼쳐 야구 경기가 열리는 개폐식 돔구장 스카이돔 한복판으로 착륙해 밴드 공연을 홍보하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맷의 계획에 또다시 끌려간 제이의 얼굴에는 예전과 다른 수심이 가득하지만 맷은 또 한 번 엉뚱한 계획을 세운다.


시놉시스의 일부를 포함한 긴 부제처럼 맷은 타임머신을 만들겠다는 작전을 세운다. 하지만 정말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니다. 일종의 ‘콘셉트질’을 해보자는 것이다. 2008년에서 2025년으로, 타임머신을 통해 과거에서 미래로 온 것처럼 상황극을 펼쳐 리볼리 공연을 성사시켜 보자는 우격다짐이 맷의 목표다. 문제는 콘셉트에 너무 진심이라는 것이다. <빽 투 더 퓨쳐> 시리즈에 나오는 타임머신을 모방하듯 전자시계를 동원해서 만든 유사 타임머신 기기를 캠핑카에 설치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비츠’라는 음료를 기기에 쏟아 화재를 일으키는 소동까지 벌인다. 하지만 그 소동은 맷의 엉터리 같은 기계에 기적을 불어넣고, 맷과 제이는 본의 아니게 17년 전인 2008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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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너바나 더 밴드>는 정말 허무맹랑한 영화다. 어디로 튈지 모르게 종잡을 수 없는 스토리만큼 자유분방한 촬영 방식으로 심심찮게 선을 넘어버린다. 이를 테면 맷과 제이는 종종 자신들을 촬영하는 카메라 감독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심지어 그들을 직접 등장시키기도 하며 종종 대놓고 촬영 방식을 의논하기도 한다. 맷과 제이가 길거리를 배회할 때 마주하는 인물들도 대부분 고용된 배우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맷과 제이는 간혹 공공장소나 길에서 마주치는 이들에게 말을 걸거나 그들로부터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합의된 대사가 아닌 듯한 즉흥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들은 출연에 대한 동의를 구하지 못한 탓인지 블러 처리가 돼있기도 하다.


이처럼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리얼리티에 기인한 연출을 통해 모큐멘터리의 묘미를 가미하는 동시에 연출된 영화 속 세계관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인물의 태도를 드러내는 메타픽션의 특징을 우스꽝스럽게 덧댐으로써 허구적인 극영화의 선을 마음껏 넘어버린다. 한편 할리우드의 프랜차이즈 고전이 된 <빽 투 더 퓨쳐>를 노골적으로 언급하고 시간여행이라는 소재까지 적극적으로 인용하는 방식은 <너바나 더 밴드>가 단순히 기발하거나 독특한 형식으로 대변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선언하는, 좀 더 보편적인 영화광의 시선을 대변하는 면모이기도 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프랜차이즈 영화의 개성을 끌어와 자신만의 문법으로 소화해 내는 응용력은 <너바나 더 밴드>가 보다 너른 저변을 내다보는 야심의 쇼케이스라는 것을 설득한다.


이 모든 독별한 장기는 제작 환경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발휘한 재기에 가까워 보이지만 이것이 끝내 <너바나 더 밴드>를 특별한 위치에 놓고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분명하고 남다른 재능으로 여기게 만든다. <너바나 더 밴드>는 원래 2007년에 맷 존슨과 제이 맥캐럴이 직접 제작한 웹시리즈 <너바나 더 밴드 더 쇼>에서 기원한 영화이며 그것이 <너바나 더 밴드 더 쇼 더 무비>라는 원제를 갖게 된 이유다. 그러니까 영화상에서 등장하는 2008년의 장면은 모두 웹시리즈를 촬영할 당시 확보한 푸티지 영상을 편집한 셈인데 결국 <너바나 더 밴드>는 영화의 기원에 가까운 2008년과 현재라 할 수 있는 2025년을 영화적인 발상으로 시간 여행을 하듯 점프하고 연결한다. 그런 면에서 <너바나 더 밴드>는 영화가 기록과 편집의 예술이라는 것을 대변하는 흥미로운 컬트 영화이자 영화가 기록을 바탕에 둔 발명이라는 것을 제시하는 비범한 성취라 평가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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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지만 이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오로지 우리 자신만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처럼 이 작품을 좋아해 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고, 허황된 기대 같은 건 없었다." 주연이자 감독인 맷 존슨의 말처럼 <너바나 더 밴드>는 지극히 사적인 허무맹랑함으로 가득한 소동극이기에 그만큼 거부당할 취향으로 점철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약 이 작품이 기이한 리얼리티로만 가득한 쇼였다면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바나 더 밴드>는 충동과 돌발의 에너지를 창작의 밑천으로 삼을 수 있는 이의 가능성과 성취를 흥미롭게 대변하는 영화다.


조악한 콘셉트를 우격다짐 밀고 나가는 슬랩스틱 코미디의 패기가 <빽 투 더 퓨쳐>에서 인용한 시간 여행 소재를 무작정 얹고 질주할 때까지만 해도 일종의 ‘쇼’처럼 보이던 영화는 그러한 설정의 껍데기 안에 잠재된 물음을 드러내는 순간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인식을 품게 만든다. 마구잡이로 꺼내 휘두르며 이목을 끌듯 도파민을 자극하던 단발적인 쇼맨십에 불과해 보이던 순간들이 함께 나누고 공유했던 우정의 시간이었음을 설득하며 인물의 기이한 행위가 아니라 특별한 진심을 믿고 싶게 만든다. 일단 흥미를 자아내는 법을 알면서도 끝내 마음을 사로잡는 법도 아는 재능을 이처럼 전에 없던 활기와 문법으로 설득하는 영화를 만나는 반가움과 즐거움이란 확실하고 충만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만약 내가 <너바나 더 밴드>의 맷처럼 살았다면 내 삶은 엉망이었을 거다. 분명히 그는 진지한 사람이 아니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를 움직이는 무언가는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진짜 내 모습일까? 물론 내가 연기한 맷은 분명 100% 진짜 내 모습이지만, 슬롯화된 지금의 나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가 여전히 말할 수 있다는 건 그래서 나에게는 다행이지." 맷 존슨의 말처럼 그가 <너바나 더 밴드>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연기한 맷은 자기 자신이 아니지만 결국 자기 반영의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까 <너바나 더 밴드>는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그 무엇이나 누군가가 존재했던 어떤 시간을 돌아보게 만들도록 발명된 탁월한 타임머신과 같은 영화다. 우정이나 친구 혹은 그 무엇이든, 거기에 자리했고 아꼈던 그 시간들, 바보 같은 표정으로 웃음을 전하던 대가 없는 마음과 얼굴들, 그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너바나 더 밴드>라는 영화의 진짜 발명이다.


(한국교직원공제회에서 발간하는 'The-K 카지노 게임' 2026년 7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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