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성시' 흐를수록 투명한 슬픔과 물음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는 시간이 지날수록 짙은 물음을 남긴다.

by민용준

대만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꼽히는 허우샤오시엔에게 거장의 지위를 부여한 대표작은 단연 <비정성시>(1989)다. <희몽인생>(1993)과 <호남호녀>(1995)까지 포함한 허우샤오시엔의 현대사 3부작 중 첫 작품으로 꼽히는 <비정성시>는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덕분에 대만 내에서도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했고, 전 세계적으로 대만영화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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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2·28 사건을 알고 있었다. 공개적으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밀실에서는 모두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사건 자체보다 정권 교체기의 이행과, 그 변화 속에서 한 가족이 겪는 변화를 포착하고 싶었다.” 허우샤오시엔이 말하는 2·28 사건은 1947년 2월 28일 대만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당시 국민정권에서 무자비하게 학살한 사건을 의미한다. 담배나 주류를 단속하던 전매국 직원이 타이베이 시내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던 과부를 폭행하자 주변의 시민들이 몰려와 항의했고 그 과정에서 경찰이 총기를 발포해 학생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분노한 타이베이 시민들은 다음날 전매국 건물을 에워싸고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중 전매국이 불길에 휩싸이는 소요사태가 벌어졌고 이러한 분위기는 대만 전역으로 확대됐다.


2·28 사건이 일어난 건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유입된 외성인을 우대하고, 대만 토박이인 본성인은 차별하고 하대하는 국민당 정부에 대한 불만이 들끓고 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당시 대만을 통치하던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한 뒤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계엄군을 보내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며 대만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1949년에 선포된 계엄령은 1987년에 이르러서야 해제됐다. 그 사이 무자비한 탄압과 희생이 이어졌다. 1997년, 2·28 사건 50주년을 맞아 대만 정부에서 발표한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대만 본성인 가운데 많게는 3만여 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기술돼 있다. 40여 년 동안 대만 슬롯에서 2·28 사건은 발음조차 꺼려지는 금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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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로서는 2·28 사건에 관한 바카라조차 구할 수 없었지만 1988년에 (장제스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장징궈가 사망했고, 그 전년도에 계엄령이 해제됐으니 2·28 사건을 다루기 적절한 시점이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가족의 시선을 통해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허우샤오시엔의 말처럼 <비정성시>는 대만의 어느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이 가족의 서사는 1945년, 라디오 뉴스를 통해 일제의 항복 선언이 전파되는 가운데 한 아이가 태어나면서 시작된다. 51년간 일제의 대만 통치가 끝나는 날, 대만 지룽시의 임씨 가문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경사를 맞이한다.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생명이 동시에 찾아오며 시작하는 영화의 도입부로부터 긍정의 예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슬픔의 도시’라는 제목으로 명명된 것처럼, <비정성시>는 한 가족이 장차 겪고 감내해야 할 상실과 비애를 관조하듯 바라봐야 하는 작품이다. 임씨 집안의 장성한 네 형제 중 고향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장사를 하는 문웅(진송용)은 집안의 가장이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장사를 하며 가세를 넓히고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은 듯 나름 지역에서 큰 형님 노릇을 한 것으로 보이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집안은 물론 그 역할까지 물려받았다.


집안에는 일찍이 드리운 식민 시절의 그림자가 좀처럼 걷히지 않는다. 되레 점점 짙어진다. 일제에 군의관으로 징병된 뒤 소식이 끊겼던 둘째는 끝내 죽어서 유품만 돌아오고, 역시 중국으로 징병된 셋째 문량(가오 지)은 일본의 패망 이후 무슨 고초를 겪었는지 실성한 채 돌아와 치료를 받아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지만 상하이에서 넘어온 조직의 꾐으로 마약 밀수에 가담하며 집안을 흉흉하게 만든다. 건실하고 선한 성품을 가진 막내 문청(양조위)은 유년 시절 사고로 청각장애인이 됐지만 사진사로 일하며 친구 관영(오의방)의 동생 관미(신수분)와 서로 연모하는 감정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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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성시>는 일제 식민지배에서 바로소 벗어났지만 중국 본토의 국민당 정부로부터 식민지 취급을 당한다고 느끼는 당대 대만 본성인들의 불만이 들끓는 분위기를 곁눈질하듯 간접적으로 비춘다. 한 가족의 역사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그들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며 극적으로 대상화하는 것도 아니다. 무대에 등장하고 퇴장하는 인물에게 차례로 초점을 맞추되 대체로 적정 거리를 유지하듯 감정을 덧대지 않고 그저 바라볼 뿐이다. 영화가 초점을 맞추는 인물은 임씨 가문의 가족 구성원 중 2세대에 해당하는 형제들이다. 구체적으로는 전쟁에 끌려가 소식을 알 길이 없는 둘째를 뺀 나머지 셋이며 그중에서도 첫째 문웅과 넷째 문청의 서사가 주요한 기둥 노릇을 한다.


문웅은 전통적인 계승자다. 아버지의 위업과 위세를 동시에 물려받은 장자는 가업과 가풍을 유지하고 전승해야 할 적자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이 깡패였지만 그건 자신이 사는 마을사람들을 일제로부터 지키기 위한 일환이었다고 말한다. 문웅은 그런 아버지가 하던 사업을 그대로 물려받아 이어가는, 집안의 적자다. 하지만 아버지의 시대와 문웅의 시대는 다르다. 일제 식민지 시절을 이겨낸 아버지의 역사는 중국 본토의 국민당 정부가 이끄는 새로운 시대 안에서 손쉽게 곡해되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그의 자식들에게 전가된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가는 문웅은 상하이에서 넘어온 무리들에게 위협을 느낀다. 중국 본토에서 겨우 살아 돌아와 회복한 셋째 문량은 상하이에서 넘어온 조직의 제안을 받고 형의 사업을 통해 마약 밀수를 시도하고, 그 사이 위폐 거래를 모색하던 부하가 상하이 조직과 엮여 죽음을 당하는 등 여러모로 불미스러운 정황이 이어진다. 그 와중에 문웅은 정체불명의 습격을 당해 급히 피신하고 문량은 매국노로 고발을 당했다는 명목으로 당국에 끌려간 뒤 집안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석방되지만 심각한 고문을 받아 완전히 미쳐버린다. 문웅은 덧없이 한탄하는 것 외에 방도가 없다. “우리 대만인이 제일 불쌍해. 일본인과 대륙인에게 차례로 괴롭힘을 당하다니.” 일제 치하에서도 버텨낸 가족의 사업은 해방 이후 오히려 더욱 가혹한 세태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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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들리지 않는 막내 문청은 집안의 사정과 다른 방식으로 어지러운 시대상에 휩쓸려간다. 타이베이에서 발생한 2·28 사건을 수습하고 대만 시민과 본토의 국민당 정부의 중재를 위해 만들어진 위원회에 참가하기 위해 떠나게 된 관영과 함께 나선 문청은 그 과정에서 폭력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온갖 행정 권력과 이익 사업을 차지하고 본성인을 차별하는 외성인에게 분노를 품고 있던 이들 중 일부는 2·28 사건 이후 외성인에게 복수하겠다는 명목으로 전통적인 대만의 언어인 민남어나 일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이들을 색출해 폭력적으로 응징한다. 이로 인해 귀가 들리지 않는 문청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외성인으로 오해를 받는 아찔한 상황 속에서 그의 사정을 알린 관영 덕분에 목숨을 구한다.


결국 지우펀으로 다시 돌아온 문청은 자신이 목격한 실상에 충격을 느끼고 실의에 빠진다. 그리고 타이베이로 간 관영은 다리에 부상을 입은 채 지우펀으로 돌아온다. 2·28 사건을 불법적인 폭동으로 간주하고 폭력적으로 진압한 국민당 정부는 중재자 노릇을 했던 위원회 인사들까지 체포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색출하는 세태 속에서 관영의 친구인 문청 역시 당국에 체포된다. 임 씨 가문의 네 형제는 급격한 세태의 풍랑 속에서 거칠게 흔들리고 쓰러진다. 돌아오리라 믿었던 것들은 돌아오지 않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당연하다는 듯 벌어진다. 일제가 물러난 자리에 되레 한 편이라 생각했던 친구가 칼을 문 귀신처럼 나타난다.


‘개가 떠나니 돼지가 왔다.’ 일제에서 벗어난 대만 사람들은 중국 본토에서 온 외성인의 탐욕에 시달리는 세태를 이렇게 탄식했다. <비정성시>는 끔찍한 역사를 직접적인 사건으로 재구성하는 대신 그러한 시대를 지나며 서서히 구조적으로 붕괴되는 어느 가족의 실상에 초점을 맞추고 가만히 응시한다.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그저 마주하며 묵묵히 바라보는 것만 같다. 그 시선 너머에서 살아가는 임씨 가문의 네 형제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들이마실 수밖에 없는 탁한 시대와 호흡하며 하나하나 차례로 휘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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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나 구술을 통해 기록된 역사로서 명징한 사건이란 그것이 사건이라 명명되기 이전에 실시간의 현실로 당면해 버린 이들에게는 예고 없이 닥쳐버린 삶이었을 것이다. <비정성시>는 그러한 삶에 먼저 주목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여백처럼 그들의 삶을 덮친 역사를 곱씹어야 함을 권하듯 그렇게 바라본다. 일어난 결과 이전에 일어나는 상황을 그리는 방식은 거시적인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분명 효과적이겠지만 <비정성시>는 그러한 효율적인 재현보다 중요한 곳을 짚는 영화다. 지나기 전까지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시대의 심란과 혼란을 있는 그대로 감당해야 하는 개개인의 처지야말로 역사가 보여주지 못하는 미세한 진실일 것이다.


<비정성시>는 삶을 규정하는 운명처럼 역사를 재현하는 대신 수많은 생의 인과로 이룬 총합을 정의하는 단위라고 말하듯 그것을 일종의 여백처럼 밀어낸다. 그렇게 역사로 마주할 수 없는 어느 한 가족의 삶과 적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넓게 펼쳐낸다. 결국 진실은 기록된 역사보다도 생생하게 숨 쉬던 삶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 지극히 사적인 일상에 초점을 맞춰도 공적인 시대를 조망하고 역사를 환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한 가족의 비극을 통해 ‘슬픔의 도시’로 점멸해 버린 어떤 시대의 통증을 되레 생생하게 보존한다. 그러한 영화의 끝에서 어떤 물음이 맺힌다.


위정자도, 희생자도 모두 다 사라진 시대에서, 명백한 비극을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기까지 이토록 수많은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는 것을 묵묵하게 되새기는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먼 타국의 비극을 그저 관망하지 못하는 건 우리도 이미 비슷한 물음으로 돌아오는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4월의 제주와 5월의 광주가 비로소 역사로 인정받기 위해 맺힌 물음들, <비정성시>는 그렇게 한 지역과 시대에 국한된 역사를 넘어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감내해야 했던 어떤 물음을 함께 던져야 한다고 말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당장 답할 수 없다 해도 물음을 이어 나간다는 건 결국 기억한다는 것이기에, 거듭 생을 이어가며 그 물음을 함께 이어가는 건 결국 중요하다. 40여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시대의 슬픔을 투명하게 간직한 <비정성시>는 그렇게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유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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