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정말 상징적인, 칸의 한국영화 9

칸영화제에 초청된 한국영화 중 상징적인 흐름을 만든 9편을 꼽아봤다.

by민용준

박찬욱 감독의 심사위원장 위촉 소식이 전해지며 국내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은 올해 칸영화제는 <곡성> 이후 무려 10년 만에 차기작을 들고 돌아오는 나홍진 감독의 예측할 수 없는 신작 <호프>의 경쟁 부문 초청을 발표하며 관심의 열기를 끌어올렸다. 그 외에도 연상호 감독의 <군체>와 정주리 감독의 <도라>가 비경쟁부문에 초청되며 어느 해보다도 한국영화를 향한 초점이 선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칸영화제와 한국영화의 랑데부는 21세기로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칸 경쟁부문에 최초로 진출한 <춘향뎐>(2000) 이후로 <취화선>, <올드보이>, <밀양>, <박쥐>, <시>, <아가씨>, <버닝>, <기생충>, <브로커>, <헤어질 결심>까지 11편의 한국영화가 경쟁부문 진출작으로 선정됐고 이 중 8편의 영화가 본상을 수상했다.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심사위원대상, 황금종려상까지, 모든 부문의 트로피를 석권했다.


지난 20여 년간 칸영화제는 한국영화의 발전을 도모하는 지렛대이자 가능성을 확약하는 보증서와 같았다. 이거 정말 상징적인 한국영화 9편을 통해 그 긴밀한 역사를 짚어본다.


<취화선>(2002)

"한국 고유의 예술적인 멋과 자연적인 미를 세계적인 경지로 끌어올린 장인의 힘."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영화 <춘향뎐>(2000)을 연출한 임권택 감독은 <취화선>으로 다시 한번 경쟁부문에 올라 감독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로 칸 본상 수상작이 탄생했다. 신윤복, 김홍도와 함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장승업을 조명한 <취화선>은 붓과 먹으로 표현한 한국화의 내면에 잠재된 한국적인 흥과 취와 한과 생을 창작자의 고뇌와 열정으로 승화시킨 장인의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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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2003)

"동시대 세계영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영화의 첫 번째 진격이자 진화."

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올드보이>는 첫 번째 한국영화였다. ‘세계적’이라는 수사에 어울리는 동시에 ‘동시대적’인 세계영화의 지류 안에서 한국영화를 조명하게 만든 첫 번째 한국영화. 20여 년 넘게 한국영화에 관해 말하는 전 세계 시네필들이 언급하는 국가대표급 고유명사다. 그 이후로 <박쥐>(2009), <아가씨>(2016), <헤어질 결심>(2022)까지 세 차례 더 칸 경쟁부문에 초청된 박찬욱 감독은 심사위원상과 감독상까지 수상하며 전 세계적인 거장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명실상부한 지위로 인정받는, 한국영화계의 이정표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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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

"고유한 작법과 화술로 한국영화의 지평을 넓힌 대구와 반복의 비범한 평범."

경쟁과 비경쟁 부문을 막론하고 칸영화제 초청을 가장 많이 받은 한국감독은 홍상수다. 무려 12차례나 된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칸 경쟁부문에 처음으로 초청된 홍상수 감독의 영화다. 비록 본상 수상작으로 호명되진 못했지만 <올드보이>와 함께 한국영화 두 편이 나란히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린 첫 번째 사례로서 의미를 더했다. 덕분에 두 영화에서 모두 주연을 맡은 배우 유지태는 두 차례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으며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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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2007)

"거장의 비등점을 보다 높고 거세게 끌어올린 가공할 연기’력’."

제60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창동 감독의 수작 <밀양>은 사별한 남편 대신 홀로 키우던 아이를 잃은 싱글맘의 애끓는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한 전도연의 연기로 주목을 받았다. 결국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칸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은 전도연은 감독이 아닌 배우로서 칸 영화제 본상을 받은 최초의 한국배우가 됐다. 아시아 배우로서는 네 번째 사례였다. <밀양> 이후로 <시>(2010)와 <버닝>(2018)으로 두 차례 더 칸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창동 감독은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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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2016)

"K좀비를 로컬이 아닌 글로벌로 폭발시킨 뇌관."

칸영화제 비경쟁부문 중 장르영화를 주로 초청하는 ‘미드나잇 스크리닝’은 대중성과 예술성의 균형을 맞춘 한국 장르영화를 견인 해왔다. 2016년에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된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은 칸에서 얻은 호평을 바탕으로 K좀비의 세계화를 이끄는 최전선의 영화가 됐으며 국내에서도 1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오는 5월 개봉을 예고한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 또한 올해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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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2019)

"한국영화사 100주년의 기념비적인 정점."

한국영화사 100주년을 앞둔 2019년 제72회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그 이후로 아카데미 4관왕까지 차지하며 기념비적인 역사를 세운, 한국영화사의 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인의 추억>(2003)과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 등 장르적 도전을 작가적 성취로 거듭 일궈내며 박찬욱 감독과 함께 전 세계 영화팬들이 즐겨 발음하는 한국감독으로서 이미 공고했던 봉준호 감독의 지위는 칸 최고상과 아카데미 4관왕의 역사를 통해 세계적인 거장들과 나란한, 전 세계 영화계가 주목하는 이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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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2019)

"범아시아적 협력을 모색한 한국영화의 가능성, 중요체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첫 번째 한국영화인 <브로커>는 함께 칸 경쟁부문에 진출해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더불어 남우주연상 수상작으로 호명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배우 송강호의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한국영화계는 비로소 칸 본상 트로피를 모두 보유하게 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회의적인 평가를 얻은 작품이지만 한국영화에 가능한 범아시아적 협력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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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2026)

"사려 깊은 시선과 뚝심 있는 관점으로 견인한 한국 여성영화의 힘."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된 <도희야>(2014)와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다음 소희>(2022)에 이어 올해 감독주간에 초청된 <도라>까지, 정주리 감독은 한국영화계에서 세 편의 연출작 모두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유일한 여성감독이다. 남성감독을 포함해도 나홍진 감독을 제외하면 유일하다. 깊고 강인하게 여성성을 견지해 온 정주리 감독의 신작 <도라>는 한 소녀가 사랑을 앓듯 경험하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주연을 맡은 김도연과 함께 처음으로 한국영화에 출연한 일본의 명배우 안도 사쿠라의 존재감이 더더욱 호기심을 부추긴다.


<호프>(2026)

"예측불허와 학수고대가 교차하는 한국영화계의 새로운 희망."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는 4년 만에 칸 경쟁부문에 진출한 한국영화다. 나홍진 감독의 모든 영화는 칸에서 처음 공개됐다. <추격자>(2008), <황해>(2010), <곡성>(2016)은 모두 칸 비경쟁부문에 초청돼 프리미어로 공개됐고, 비로소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칸영화제 측은 출품 접수 마감 시한 연기를 승인하며 <호프>의 경쟁부문 진출에 조력했다. SF장르로는 보기 드물게 칸 경쟁부문에 오른 <호프>의 수상 여부를 판가름할 올해의 본상 심사위원장은 바로 박찬욱이다. 귀추가 주목된다.


(한화 금융에서 운영하는 라이프플러스 트라이브 앱에 게시한 글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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