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우주 SF 영화의 새로운 전형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소설 <마션>의 원작자 앤디 위어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두 번째 영화다. 영화 <마션>의 각본가 드류 고다드가 또 한 번 앤디 위어의 소설을 각본으로 옮겼다. 우주에서 나 혼자 살게 된 과학자의 1인칭 라이프를 위트 있게 묘사하는 SF작가 앤디 위어의 장기가 마음껏 발휘된 소설 <마션>이 화성 탐사 중 홀로 고립돼 감자를 경작하며 버틴 생물학자의 생존기를 그린 우주 버전의 <캐스트 어웨이>라면 <마션>만큼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앤디 위어의 또 다른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인류의 운명을 걸고 홀로 우주 항해에 나서게 된 과학자의 <미지와의 조우> 혹은 <E.T.>에 가깝다.
‘헤일메리(Hail Mary)’는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가톨릭 기도문인 ‘성모송(Ave Maria)’를 의미하지만 현대에서는 미식축구 전술로서 더욱 잘 알려진 용어다. 경기 막바지 대역전의 가능성을 노리는 팀에서 터치다운을 성공시키기 위해 쿼터백이 던지는 롱패스 전술을 구사하고자 대부분의 선수들이 엔드존까지 전력질주하는 작전명이다. 이때 쿼터백은 질주하는 선수들이 엔드존에 다다르기 전까지 상대팀 선수들의 태클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가드 선수들의 공백을 최대한 견뎌내면서도 패스를 할 타이밍을 엿보며 럭비공을 사수해야 한다. 그야말로 극단적인 상황을 이겨내야 하는 벼랑 끝 전술인 것이다. 그래서 ‘헤일메리’라는 말은 ‘마지막 희망’이라는 의미로 은유되기도 한다.
‘헤일메리 프로젝트’는 인류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 마지막 희망을 건 우주 탐사 계획이다. 한 과학자가 태양과 금성 사이를 연결하는 얇은 선을 관측했고, 이를 발견한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페트로바선’이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페트로바선과 연결된 태양에서 이상 현상이 감지된다. 태양빛이 점차 감소하고 있으며 지구로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가 줄어들어서 지구의 온도가 차차 낮아지는 탓에 인류는 치명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전 세계 정부가 힘을 합쳐 일말의 해결바카라을 강구하는 상황에서 페트로바선이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는 세포 ‘아스트로파지’의 이동 경로라는 것을 알게 되고 페트로바선과 연결된 수많은 별들 가운데 지구로부터 11.9광년이나 떨어진 타우세티 항성계에 유일하게 빛을 잃지 않은 행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아스트로파지를 번식시켜 막대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인류는 아스트로파지의 천적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타우세티로 탐사선 ‘헤일메리호’를 보내기로 한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우주선 ‘헤일메리호’에서 눈을 뜨게 된 그레이스와 함께 시작한다. “여기 어디야?” 거대한 플라스틱백 안에서 깨어난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는 자신이 왜 거기서 깨어났는지 알지 못한 채 그저 당황한다. 그리고 곧 자신이 망망한 우주 속에 자리한 우주선에 탑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왜 거기 탑승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와중에 ‘원자 분해능 주사’ 같은 기기를 알아보는 것을 보니 자신이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어쨌든 지구로 다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곧 알게 된다.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지구에서 보던 태양이 아니라는 걸,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떠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나는 누구지?” 그래서 알고 싶다. “여긴 어쩌다 왔지?”
‘헤일메리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낙점된 그레이스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엔드존까지 내달려야 하는 지구 대표선수다. 그의 터치다운이 가능하다면 인류의 미래는 괜찮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없다.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 연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실상 터치다운을 위해 멀리 던져진 럭비공에 가깝다. 지구로부터 11.9광년이나 떨어져 있다는 타우세리 행성 인근까지 다다른 우주선에서 자신이 어쩌다가 지구를 구할 적자로 낙점돼 이 먼 우주까지 떠밀려왔는지 기억을 더듬어가는 그레이스에게는 우주에서 깨어나 맞닥뜨린 그 모든 상황이, 심지어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까지도 물음표다. 그런 그에게 그러한 근본적인 물음을 압도하는 새로운 물음이 찾아온다. 외계인과 접촉한 최초의 지구인이 된다.
정체불명의 존재의 등장은 공포감을 부르는 동시에 호기심을 부추긴다. 그레이스는 이처럼 상반된 감정으로 미지의 존재를 향해 나아간다. 다행히도 에이리언처럼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외형은 판이하다. 인간 입장에서 보기에는 얼굴이 존재하지 않고 다리가 여럿 달린 바위처럼 보여서 ‘로키’라는 이름을 붙여준 그레이스는 판이한 외양과 언어를 극복하고 소통에 성공한다. 서로 다른 존재라는 인식은 드넓은 우주에서 각자 혼자가 된 그레이스와 로키에게 딱히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아스트로파지의 비밀을 알아내고 자신의 별을 구해야 한다는 목표가 더이상 개인이 아닌 공동의 비전이 되어 서로 지식을 나누며 연대한다. 그렇게 둘도 없는 친구로 거듭난다.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는 이야기에 매료되지만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 영화의 두 번째 주인공은 얼굴 없는 외계 암석이다. 관객은 그 외계 암석과 사랑에 빠져야 한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나라면 저 암석을 위해 죽을 수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는 성공하지 못할 거다. 바로 그런 부분이 우리를 흥분하게 만드는 도전이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공동감독 크리스 밀러의 말처럼 그레이스와 로키의 우정은 영화의 감정적 중추를 이루는 동시에 근원적인 목적지에 가깝다. 자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질문을 던지던 그레이스는 로키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져본다. “누구를 위해 죽을 수 있지?” 인류를 위한 헌신을 선택했을 것이라 추정하는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고 있던 그레이스는 로키를 통해 이타적인 행위의 의미를 곱씹는다.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우주에서 만난 외계인 로키는 그레이스가 지구에서 생각해보지 못한 바를 고민하게 만든다. ‘용기 유전자’가 없어도 ‘용기를 내게 해줄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지구에서 들었던 말이 우주에서 만난 뜻밖의 연을 통해 자연스레 스며든다. 망망한 우주에서 홀로 고립된 이형의 존재는 그렇게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아간다. 그 우정은 웃음기와 장난기로 점철된 이야기의 낙천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절절하게 샘솟고 뜨겁게 차오르는 심정을 쥐게 만든다. 말도 통하지 않고 교감이란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존재와 함께 나아가고 극복하며 기꺼이 헌신하고 희생을 감행하는 모습으로부터 숭고한 감정이 전해진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정방형에 가까운 아이맥스 비율로 구현되는 우주 배경의 현재 시제와 세로가 긴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구현되는 지구 배경의 과거 시제를 교차편집 방식으로 전환하며 두 시제를 차례로 진전시킨다. 우주의 무중력과 지구의 중력 사이를 롱패스하듯 차례차례 반복해 나열하며 그레이스에 관한 비밀을 한꺼풀씩 벗겨낸다. 그리고 끝내 그레이스가 우주 탐사에 나서게 된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우주만한 아이러니가 덮쳐온다. 만인의 희생을 막기 위해 한 사람의 희생을 강제하는 상황의 합리는 일방적인 폭력이지만 끝내 모두를 살리는 선택이 된다. 그런 면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차이란 한계이기도 하지만 가능성일 수도 있다는 제안의 영화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용기를 내게 해줄 사람이 있기에 기꺼이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용기에도 유전자가 필요한 것 같은데 자신에게는 그것이 없기에 할 수 없는 일이라 여긴다. 희생이라는 말의 의미도, 가치도, 무게도 저마다 다르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같아도 서로 다른 뜻을 향하고 있다면 늘 함께하는 것 같지만 끝내 혼자일 것이다. 그렇게 언제나 혼자였던 그레이스는 그래서 우주로 떠밀려간다. 걱정할 직계가족도, 키우는 개도 없어서 인류의 희망을 위한 적자로 강제된다. 하지만 그런 불합리한 결정이 그레이스의 삶에 되레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준다. 그럼으로써 희생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동원할 필요 없이 아끼는 마음으로 대하고자 하면 끝내 잃는 것이 아니라 얻게 되는 법이라는 것을 수긍하게 만든다.
그레이스가 ‘헤일메리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프로젝트의 총바카라임자 스트라트(산드라 휠러)는 신을 믿느냐는 그레이스의 질문에 이와 같이 답한다. “안 믿는 것보단 이득이니까.” 누군가에게 신은 믿음의 여부를 묻게 만드는 의미이지만 누군가는 신에 대한 믿음이 손익의 기준으로 평가할만한 가치가 된다.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구하고자 노력하고 선택한다. 그렇게 누군가는 가혹하더라도 판단하며 끝까지 바카라임을 지고, 누군가는 비정하게 내몰린 듯하나 거기서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 그러니까 삶이란 정말 모를 일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러한 아이러니가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문이 될 수 있다고 권하는 작품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돌아갈 수 없다고 각오했다면 어디든 갈 수도 있을 것이므로, 거기서 어떤 인연을 맺을지 모를 일이기에.
(한국교직원공제회에서 발간하는 'The-K 카지노 게임' 2026년 5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