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에 찍히지 않는 진짜 나의 자산을 찾아온 20년의 기록
남들에게 부러움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던 '지위 소비'의 허상을 깨닫고, 그 다람쥐 쳇바퀴 같은 구조를 끊어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였습니다. (이전 글)
저는 잠시 극단적인 생각에 빠지기도 했어요.
'그럼, 이제 모든 비싼 물건들을 멀리해야 하나?'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각성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억압일 뿐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디에 돈을 써왔는지 편안한 마음으로 적어보자 했지요.
20대부터 40대까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고 그로 인해 무엇을 얻었는지 '돈'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차근히 구슬을 꿰어보기로 했습니다.
저의 20대는 새로운 경험과 세상을 돌아다니며 흡수할 수 있는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돈이 충분해서 이런 경험이 가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부족한 경우가 더 많았죠. 대신 모든 기회들에 ‘예스‘라 답했고, 그 기회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 벌고-모으고-경험하고 ‘를 반복했습니다.
대학교를 막 들어간 때라 영어학원에서 선생님을 하며 돈을 모았더랬죠. 유치원생부터 고3까지 전부 가르쳤어요. 그 돈으로 캐나다 언어 연수와 배낭여행을 갔습니다.
10주간의 캐나다 횡단 배낭여행은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잘 한 결정이라 생각해요. 26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을 정도니까요. 가장 오랫동안 버스 안에 있었던 기록은 38시간. 그레이하운드 버스의 딱딱한 의자에 쭈그려 앉아, 끝없이 펼쳐진 평평한 땅을 수십 시간 바라보아야 했던 지루함. 하지만 그 정적을 깨고 버스 안에서 꾸벅거리며 졸다가 문득 맞이하던 경외로운 환상의 일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장소에서의 흥분 또는 지루함. 다양한 인종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어쩌다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 때의 깊고도 심오한 대화들이 주는 짜릿함이 교차하던 시간들이었거든요. 한 방에 8명이 머무는 호스텔을 돌아다니며 가장 경제적으로 열악했지만, 가장 온몸의 감각이 열려있었던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 (Greyhound Canada)는 92년간 광활한 캐나다의 국토와 서민의 삶을 연결한 생명선이자, 2021년 폐업으로 한 시대의 종말을 고한 국민 버스입니다.
이 버스 안에서 장거리 이동의 긴 시간을 견디어야 하는 지루함과 고단함 속에서 저는 '내가 누구인지'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옆자리의 사람이 바뀌며 그들과 나눈 대화들을 통해서 말이죠.
단순히 눈에 보이는 풍경을 구경하는 것을 넘어, 세상의 다채로운 (다른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들으며 온몸으로 그들을 이래라고, 저 자신의 내면을 마주한 여정이었습니다.
일본 교환학생 시절에는 장인정신과 집요함을 배웠고, 캐나다에서는 헤어 모델을 하며 생활비를 벌기도 했죠. 반 고흐의 그림을 너무 좋아해 토론토며 캐나다 전역의 전시회를 쫓아다녔고, 머무는 나라마다 수족관을 꼭 방문하곤 했습니다.
영국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할 때는 백화점과 옷가게에서 일하며 생활비 및 용돈을 벌었고, 번역과 통역을 통해 다양한 산업의 결을 간접적으로 경험했어요. (이때의 경험이 비즈니스 통역으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왔네요) 그렇게 번 여분의 돈은 학기 중에 틈만 날 때마다 영국 곳곳을 여행하며 새로운 문화와 생활을 이해하는 데 아낌없이 사용했더랬죠. 시간만 나면 번 돈을 연극 티켓에 '몰빵'하는 연극 덕후이기도 했습니다.
영국, 미국, 홍콩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며 돈을 벌고, 여전히 여행을 다니며 세상을 이해해 갔습니다. (물론 홍콩에서는 환경이 잘 맞지 않았는지 쉼 없이 아파서 병원비로 돈이 다 나갔던 쓰린 기억도 스치네요!)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모아두었던 돈을 털어 로마를 거점으로 삼고, 주변 지역과 프로방스, 디자인과 미술 갤러리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20대에 썼던 돈은 나를 가두는 성벽이 아니라, 더 큰 세상을 보기 위해 배움의 입장권을 기꺼이 지불했던 시기였습니다. 시드머니를 모아 투자한 것은 다채로운 경험을 쌓는 훌륭한 시드경험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30대가 되자, 돈을 소비하는 패턴이 완전히 변질되어 가고 있음을 이제야 뼈저리게 보게 됩니다. 온라인 게임인으로서 커리어의 정점에 있었고, 여러 회사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가장 화려한 시기를 보냈죠.
스페인에서 10년 동안 살며 제 일을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최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일적으로 인정받고 최고가 되겠다는 욕심이 컸던 만큼, 이 시기부터 소비의 결이 요란하게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것은 멋진 취향이 아니라, 마음속의 거대한 구멍과 불안을 감추기 위한 '허영의 갑옷'에 불과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먹고, 입고, 놀고, 쓰는 것들의 스케일이 커졌습니다. 더 큰 집, 더 화려하고 비싼 옷, 시즌마다 바뀌는 신상 가방과 신발, 비싼 외제차, 5성급 호텔, 럭셔리 와인 투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 지갑은 쉼 없니 열리고 닫혔죠.
일 년에 5번은 뉴욕, 런던, 파리, 밀란, 도쿄로 출장을 다녔고, 그때마다 손에는 값비싼 신상들이 들려 있었습니다. 주말마다 남편과 스페인 곳곳을 여행하고, 포르투갈을 차로 쉽게 오갔죠. 연봉 2억, 버는 돈이 많은 만큼 씀씀이도 커졌습니다. '이 정도 지위는 유지하고 갖춰야 한다'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던 그 모든 날들이, 지금 생각하면 참 요란하고도 허망한 과소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렇게 많이 벌던 돈은 통장을 스쳐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4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삶의 뿌리가 흔들릴 만큼의 바닥을 치는 고통을 겪지 않았더라면, 저는 여전히 30대처럼 헛소비를 하며 평생을 허영 속에 살았을 거예요.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자산을 쌓는다는 것은 단순히 통장에 숫자를 불리는 단계를 넘어, 삶의 주체로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는 것을요.
영국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로 만난 남편과 어느덧 24년을 함께하며 '어떤 아내가 될 것인가'를 고민했고, 아이를 키우며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하는지' 매일의 온도를 다듬었습니다. 또한 두 번째 비즈니스인 코칭과 컨설팅 사업을 통해 개인 브랜드를 넘어 스몰 비즈니스부터 굵직한 중견기업까지 다양한 산업의 결을 깊이 이해하며 세상을 보는 또 다른 관점을 얻게 되었죠.
멈춰 서고 나서야 비로소 제 소비의 반복되는 패턴을 볼 겨를이 생겼습니다. 제가 집착했던 것은 단순히 남들이 부러워하는 '가격표'가 아니었어요. 수량이나 과시의 다양성보다, 감각적이고 미적이며 퀄리티가 높은 것을 본질적으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유명하고 비싸기 때문에 산 것이 아니라, 명품 자체를, 잘 만들어진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디자이너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저는 여전히 잘 만들고 멋진 디자인의 가치를 깊이 공감하고 사랑하고요.
지금 머무는 핀란드의 사람들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아무도 어떤 브랜드를 들고 다니는지 신경 쓰지 않지만, 장인정신과 세공, 그것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미적 감각과 노력 그 자체에는 깊은 경외심을 갖습니다. 비싼 물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섬세함과 노력의 가치 자체에 빠져 있다는 걸 핀란드에 와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5성급 호텔에 머물고 미슐랭 레스토랑을 찾아다녔던 것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까다로운 취향이 구현된 인테리어, 음식, 공간을 누린다는 것은 남편과 함께 황홀한 추억을 쌓아가는 아름다운 과정이었으니까요. 다만 그것에 너무 매몰되어 과하게 반복해서 소비했던 건 결국 돈에 휘둘린 격이었습니다.
40대가 되어서야 어깨에 힘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니, 소비의 결은 훨씬 심플하고 편안해졌습니다. 화려하고 럭셔리한 여행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단란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 큰돈이 들지 않아도 일상의 작은 것들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지내는 시간들. 어딜 가든 그곳의 음식을 맛보고 새로운 경험을 온전히 음미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돈을 쓰는 가치의 중심이 '타인의 시선'에서 '나와 내 가족이 느끼는 진짜 감각'으로 완전히 이동한 것이죠.
이제야 제가 추구하는 경제적 자유가, 통장에 찍히는 숫자로서의 부와 내가 실제로 느끼는 감각으로서의 풍족함, 이 둘 사이의 조화에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숫자만 좇으면 아무리 채워도 계속 허기지고, 감각만 좇으면 뿌리 없이 흔들립니다. 통장의 숫자는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이고, 내가 진짜 아끼는 것들에 대한 감각은 나를 살아있게 하는 이유입니다. 이 둘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부가 완성됩니다.
돌이켜보면, 돈은 제 삶의 궤적 속에서 끊임없이 그 성격을 바꾸고 다양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더 크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해 소비한 20대
허영과 사치의 욕망이 광기처럼 표출된 30대
쌓이는 자산의 가치와 진정한 의미를 본 40대
앞으로 맞이할 50대, 60대, 70대에는 또 어떤 소비를 하며 돈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될지 지금은 다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때보다 돈을 사용하는 가치의 기준이 제 안에 아주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는 사실입니다.
나라는 개인에서 시작해 내 곁의 가족, 친구, 온라인 게임, 그리고 내가 일구는 사업과 속한 커뮤니티, 슬롯, 국가에 이르기까지—우리의 삶은 수많은 층으로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돈은 그 층위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내 감정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뒤흔들었고, 인생의 전환점마다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제는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내 삶의 울타리 안에서 따뜻한 기억을 빚어낼 수 있음을 압니다. 물건을 구매할 때도 지위가 아닌 기능과 미적으로 아름다운 디자인,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오래 곁에 두고 쓸 수 있는지에 더 깊은 기준을 둡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의 기준이 생겼다는 의미겠죠.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인간관계와 사업, 슬롯를 향해 그 가치를 온전히 흘려보내는 것. 지위가 아닌 가치의 쓰임에 기준을 두고 선택하는 것의 의미를 알겠어요.
결국 숫자와 감각, 그 둘 사이에서 나만의 균형점을 찾아가며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을 잇는 겹겹의 층을 아름답게 다지는 일—그것이 바로 제가 남은 인생에서 가장 조화롭게 부를 대하는 방법이자, 내 삶의 온전한 큐레이터가 되는 길임을 이제는 이해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해군 장교의 딸로서 10개국 유랑 끝에 발견한 생존을 위한 ‘돈과 라이프 사이클’을 토대로 한 자기 분석을 풀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