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시작은 돈의 구조를 장악하는 것부터
5천만 원을 그렇게 흔적도 없이 날려놓고도, 저는 한동안 소비를 멈추지 못했어요. 돈을 다루는 법을 몰랐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몸에 밴 습관은 다른 얘기였거든요.
화려하고 비싼 하이엔드 제품을 휘감고 다니며 옷, 신발, 가방, 주얼리, 차를 살 때 제가 바랐던 건 결국 ‘지위’였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어요. 샤넬 쇼핑백을 들고 매장을 나올 때의 묘한 짜릿함, 남들이 알아주는 명품 로고가 박힌 신발을 신고, 수입차에서 내릴 때 쏟아지던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나도 모르게 즐기고 있었던 거죠. 은밀한 우월감을 얻는다고 느꼈던 거더라고요.
28년째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바닥부터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했는지, 조직을 위해 어떤 대단한 업적을 이뤘는지를 사람들이 알아줄 때 뿌듯했으니까요. 명품을 살 때 ‘나는 이 정도 구매할 만한 능력이 된다’라는 지위를 내보이고 싶었던 겁니다.
5성 호텔에서 머물고,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회사를 다니며 연봉 2억을 받던 시기에 스페인에서 살았다 보니 주변의 유럽 국가들도 쉽게 갈 수 있었죠. 그런 모습들을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걸 즐겼던 것 같습니다. (그때 블로그든 SNS든 세세히 전부 기록을 해두었더라면 지금 푸드, 와인, 여행 인플루언서 중 하나는 되었을 텐데요!)
물론 중요한 자리에서 품위를 지키는 일도 필요했어요. 제가 다녔던 Sociedad de Textil Lonia라는 회사는 CH Carolina Herrera와 Purificación García라는 2개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고, 42개국에 진출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대명사이자 스페인에서는 럭셔리 국민 브랜드였거든요. 회사를 대표해 수석 디자이너로서 아티스트나 유명인들과의 스페셜 컬렉션, 리미티드 에디션 등 실패해서는 안 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밖으로 나갈 때의 겉모습이 브랜드의 엠버서더 역할이 될 수밖에 없었죠.
제 사업을 처음 창업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가장 저가인 25만 원에서 180만 원 가격대의 프리미엄 주얼리 브랜드를 만들었거든요. 브랜드를 대표하는 세련미, 고급스러움, 우아함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고객들도 연봉 1억 이상의 능력 있는 사업가나 CEO 등 경제적으로 부유한 분들이 많았기에 그에 맞는 옷차림, 매너, 태도, 습관, 대화 주제가 필요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어요.
하지만 지나고 보니, 어쩔 수 없이 갖춰야 했다고 믿었던 그 모든 태도와 핑계들조차 결국은 내 불안을 감추기 위한 변명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비즈니스 미팅이나 중요한 자리에서, 굳이 내가 입을 열지 않아도 압도적이고 권위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슬롯적 갑옷‘이 필요했던 거죠. 이 치명적인 결핍을 채우기 위해 표면적으로 보이려 했던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지위를 좇는다는 것은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주기로 결심했다’는 뜻이었어요. 그리고 이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지도 이제는 알아요. 타인의 시선을 분별없이 따르다 보면 내 정체성은 흐려지고, 그 대가는 언젠가 숨겨진 비용으로 되돌아오거든요.
결국 돈을 다룬다는 것은 단순한 수치나 계산 같은 과학이 먼저가 아니라, 내 마음의 욕망을 직시하고 삶을 빚어내는 ‘예술’에 더 가까운 일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멈춰 세운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정지 화면 속에서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고 제 안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얻었어요.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져 폐허를 뚫고 바닥까지 찍고 나서야 비로소 보였죠. 제가 진짜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에게 잘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돈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거품 같은 행복을 계속 덧칠하고 있었던 겁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는 완벽한 ‘돈에 휘둘리는 삶’의 구조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노동 - 소득 - 지출 확대 -부채 발생 - 불안정‘으로 이어지는 다람쥐 쳇바퀴를 열심히 돌리고 있었던 거예요. 돈이 들어오면 쓰기 바쁘고, 더 나은 지위를 보여주려 지출을 늘리며, 결국 불안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구조요. 거품 같은 행복을 계속 덧칠하며 스스로를 소모하고 있었던 겁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전 정말 아주 어둡고 깊은 동굴 속에 갇힌 느낌이었어요. 고정비와 인건비가 계속 나가더라도 외부출입의 셧다운 되는 상태를 맞이하니 잘 나가던 사업도 1억의 빚이 쌓이고, 남편의 전 비즈니스 파트너가 60억 소송을 걸었던 때였거든요. 남편과 아이가 있으니 극단적인 선택을 하진 않았지만, 세상의 수많은 이들이 삶을 포기하는 이유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온몸이 에이는 엄청난 고통을 경험했었죠. 심한 우울증, 자살,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와 관련된 바카라들을 꽤나 읽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때 읽었던 바카라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에 대한 거였어요. 호스피스 병동에서 수많은 임종을 지켜본 간호사 브로니 웨어(Bronnie Ware)의 기록을 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남긴 후회 1위는 돈도, 명예도 아니었어요.
남들이 내게 기대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진짜 삶을 살 용기가 있었더라면.
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가수 데이비드 캐시디(David Cassidy)도 세상을 떠나기 전 가족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해요.
참으로 낭비한 시간이 많았구나
(So much wasted time).
예전의 저처럼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타인의 기대와 시선에 맞추느라 진짜 삶을 살지 못했던 걸 뼈저리게 후회하며 세상을 떠나요. 우리는 지금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맞추느라, 혹은 더 번지르르한 지위를 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을까요.
지금 돌이켜보면, 지독한 ‘돈지랄’을 멈추게 만들고, 제 안의 어두운 그림자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이 각성의 순간이, 제 인생에 찾아온 것이 차라리 천만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각성 후에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진정으로 부를 일군 사람들의 돈의 구조는 제 삶의 방식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들의 삶은 ‘돈을 지배하는 구조’로 움직입니다.
현금이 들어오면 곧바로 소비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현금 유입 - 회계와 통제(빠져나가는 경로 차단) - 자산 축적 및 재투자 - 경제적 자유‘의 순서로 단단하게 설계되어 있죠. 잠든 사이에도 시스템이 돌아가며 자산이 스스로 불어나는 구조를 완성한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차트를 분석하고 숫자를 셈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내 삶의 주도권을 타인의 시선에 뺏기지 않고, 내면의 기준으로 단단하게 통제하는 '삶의 예술'입니다.
타인의 시선을 좇는 삶은, 남들이 바라는 모습으로 살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우리를 가장 형편없는 배우로 만들어버려요.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불안해하며 지갑을 열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내렸죠.
사실 돈으로 생난리를 쳤던 과소비 시기를 거치지 않았다면 이런 깨달음을 못 얻었겠죠. 지금은 핀란드에서 고요하고 심플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이곳으로 이주한 초기 5년 동안 저는 그 평화와 여유를 전혀 누리지 못했어요.
핀란드의 경외롭고 아름다운 숲과 바다의 풍경을 눈 바로 앞에 두고도, 노트북 화면 속에 푹 빠져 시차와 마감에 쫓기며 밤새워 일하기 바빴죠. 정작 눈앞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타인이 보기에 성공한 ‘멋진 사장님’ 타이틀을 쥐기 위해 발버둥 쳤으니까요.
결국 깨달았어요.소비만으로 채워진 삶이 진정한 행복이나 자유를 줄 수 없다는 걸요. 물리적으로 어디에 살고 있는가, 어떤 화려한 환경에 놓여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요. 진짜 중요한 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며, 내면에서 어떤 각성을 하느냐’였어요.
제 자신을 휘감고 있던 그 화려한 껍질들을 제대로 벗어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 안의 진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고, 좋든 싫든 그 진실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진짜 삶이 시작되었어요.
이제는 돈을 쓰는 데 있어 남의 의견이나 관심에 개의치 않아요. 그저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것에만 기준을 두죠. 남들의 시선을 좇지 않고 진정한 내가 될 때, 비로소 내가 가장 잘하는 일과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남들의 시선이라는 허상을 거두어내고, 지갑과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내 손으로 찾아오는 것. 그것이 바로 제 남은 인생에서 치러야 할 가장 현명한 투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명품을,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전부 버렸을까요?
각성 후, 제가 새롭게 돈을 다루고 쓰는 기준점에 대해서 다음 글에서 이어가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