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속에서
갑작스레 비가 내린다.
다행히 우산은 챙겨 가지고 나왔다.
우산을 펴기에는 애매한 강우량,
가는 빗줄기를 기꺼이 맞아주며 걸어간다.
비를 맞으면서도 당당하게 걸어갈 수 이유가,
펼치지 않은 우산에 있다.
언제든지 우산을 펼 수 있지만,
이 정도 비에는 펴지 않는 것뿐이다.
우산이 없는 조건과는 같지 않다.
소유란 그런 기능성이다.
그것이 지닌 사용가치를 넘어선,
그것을 지님으로써 얻게 되는 심적 효용까지….
우산을 펴지 않은 채로 비를 맞고 걸어가는 것과,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걸어가는 것의 차이.
그 사이에 우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