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정치
오프닝에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언급되고,
오펜하이머를 ‘미국의 프로메테우스’에 빗대기도 하지만...
아이스킬로스의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천상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네 준 사건이 프로메테우스가 결박당한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다. 물론 신화의 버전이 여러 개가 있겠지만, 불의 도난 사건은 판도라로 상자로 이어진다. 오펜하이머의 걱정도 핵기술이 열어젖힐 ‘판도라의 상자’였던 거잖아.
트루먼과의 대화에서,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죄바카라감을 토로하지만,
트루먼은 그걸 ‘월권’으로 받아들인다.
일본은 폭탄 투하의 결정권자를 기억하지, 개발자를 기억하지 않는다며...
본인의 대중적 인기만 고민하는 정치인에겐,
과학자의 고뇌도 시샘의 대상이다.
삶의 주제가 다르다는 것은 겪어온 시간성의 차이이기도...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각광을 원하는 욕망은, 상대의 순수에서도 ‘의도’를 읽어낸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래 보이는 거야. 본인이 삐딱하다는 자각은 없다.
트루먼은 자신의 편협함으로 오해를 했다손 쳐도,
치졸한 정치인들과 욕심에 눈이 먼 동료 과학자는, 그게 그런 의도가 아니었음을 알면서도, 그를 ‘결박’하고자 ‘판도라의 상자’를 빌미로 그를 몰아세운다.
우리네 삶에서도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하잖아.
이 말을 어쩜 저렇게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싶고
아닌 걸 알면서, 어쩜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지 싶은 이들.
양자이론에 대한 견해가 달랐던 아인슈타인을 찾아가 묻는 장면은
그를 통해 뭔가를 시사하고 싶었던 의도였겠지.
생각이 ‘달랐기에’ 찾아간 건, 확신보다 확실이 필요했던 사안이라서...
아이슈타인은 정치의 졸렬함까지 내다보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과학계의 선배로서가 아닌, 먼저 걸어가 본 자로서의 조언을 건네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아인슈타인은 그런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