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
자연의 이치를 이(理)라고 해. 이것이 인간의 품성으로 개체화 된 개념이 성(性)이다. 이 추상적 원리가 기(氣)적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심(心)이다. 그렇다면 心으로부터 비롯되는 정서(情)라는 건 오롯하게 氣의 결과일까? 아니면 理까지 소급해야 하는 문제일까? 이걸 가지고 퇴계와 기대승, 그리고 율곡이 서신을 주고받으며 논박을 펼친 것.
서양철학에서의 관념론 같은 느낌이지? 실상 중국의 철학서들이 서구의 사유에 영향을 미친 바도 있으며, 성리학의 비조인 주자 자신이 불교와 도가의 관념론에서 팁을 얻었다. 한문 전공자인 나도 서양철학사를 공부한 후에야, 그게 그런 의미였구나 하며 새삼 이해한 대목이다.
지금이야 뇌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지만, 옛날에는 서양이나 동양이나 중심 기관은 심장이었다. 실제로 가슴이 아프기도 하잖아. 그렇듯 과학적 이성과 인문적 정서는 함께 가는 것.
나는 중국어 전공자이기도 하다. 외국어를 공부하다 보면 한국어에 대한 보다 섬세한 이해가 가능하다. 나의 영역 바깥에서, 나의 영역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가능할 때가 있다. 나의 세계 밖을 내다 봐야, 안을 더욱 면밀히 살필 수도 있는 것. 들뢰즈의 가장 대중적인 키워드인 ‘노마드’가 이런 함의다. 여행을 권장하는 철학인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