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질투, 몸의 입스(Yips)
마음의 문제가 신체의 문제로 발현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운동선수들이 간혹 겪는 입스(Yips). 자세가 무너진 것도 아니고, 잘 할 때처럼 하는데 안 되는 경우라서, 그 원인을 찾기가 힘들단다.
프로 리그에서도 베테랑으로 통하는 3루수 신이치에게 찾아온 입스. 언젠가부터 송구가 안 된다. 팀에는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부상 핑계를 대며 몰래 정신과를 찾는다.
훈련 중, 3루 백업 자원인 신인 스즈키가 부상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잠시 입스가 사라진다. 스즈키의 부상이 심하지 않은 걸 확인한 이후 입스가 돌아온다. 자신과 3루 포지션이 겹치는, 잘 생긴 외모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후배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던 것. 스즈키가 잘못한 건 없다. 또한 자신에게도 깍듯한 청년이다. 그냥 본인 혼자 느끼는 불안이 그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회식자리에서, 스즈키와 만취가 되도록 퍼마시면서 그에게 내어주지 않았는 마음 한자리가 조금씩 열린다. 술자리가 끝나고 취한 후배들을 다 택시를 잡아 보낼 정도로 신이치의 인성이 밑바닥인 것도 아니다. 연거푸 택시를 잡고 있는 중에 스즈키가 보이질 않는다. 저 멀리서 술에 취한 스즈키가 야쿠자들과 시비가 붙었다.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스타플레이어가 술에 취해 야쿠자들가 시비가 붙었다는 1면 기사를 생각하니, 자신의 불안이 덜어지는 것 같다.
못 본 척, 모른 척 택시를 탔다가, 결국 내린다. 입스가 마음의 문제에서 비롯된 거라면, 이런 찌질함의 결과도 결국엔 다른 문제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무엇보다 신이치의 심성이 밑바닥은 아니었다는 것. 다시 돌아가 야쿠자들과의 문제를 해결한다. 본인이 선배답게, 어른스럽게 처신한 이후부터 몸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입스 중간중간에 정상으로 돌아올 때가 있었다. 중학교 시절까지는 투수도 맡았던 바, 그 시절에 배운 정석의 폼대로 와이드업을 했을 땐 입스의 문제가 없었다.
괴짜 정신과 의사 이라부는 신이치와의 캐치볼을 하면서 진단을 해나간다. 병원 직원들끼리 만든 야구 동호회에 가입, 경기가 있는 날에 신이치를 초대한다. 시합의 바깥에서 한 꼬마와 캐치볼을 하던 중, 꼬마가 공을 받다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배려를 하다 보니, 입스를 의식하지 못했다. 공은 제구의 방향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라부의 성화에, 신이치는 반강제적으로 동호회 야구에 3루수로 출전하게 된다. 프로선수가 아마추어 수준도 아닌 동호회 야구에서 깨달은 바는, 저들의 얼굴에선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는 것. 정말로 야구를 즐기고 있다는 것.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언젠가부터 자신이 잃어버리고 있던 것, 잊어버리고 있던 것. 그것이 동호회 야구인들 사이에 있었다.
뇌과학에서는 호르몬 작용으로 설명하잖아. 이는 뇌를 생리학 관점에서 분석한 걸까? 심리학 관점에서 분석한 걸까? 애매하지? 이분법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나 모호한 거지, 일원론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철학사에서는, 스피노자가 최초는 아니었으나, 철학사적 의의는 스피노자를 기점으로 본다. 신체에 대한 정신의 우위였던 사상사에, 신체의 지위를 회복시킨 사건. 이때가 이미 유럽으로 중국의 철학서들이 많이 유입되었던 시기다. 극동의 일원론이 영향을 끼친 서양철학사의 한 줄기가 니체의 계보와 정신분석의 계열로까지 이어지는 것.
정신분석은 역설적으로 신체의 담론이다. 몸과 맘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동호회와 프로의 기량 차가 가장 현격한 운동이 야구란다. 프로선수들의 몸에 밴 기량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훈련한 결과이겠어. 그런데 반사적으로 반응하도록 몸에 밴 것들은 의식의 영역이겠어? 무의식의 영역이겠어? 그래서 무의식의 시간을 더듬어 올라가 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