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 - 자기합리화, 정당화

<슬램덩크>, 캠코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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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슬램덩크>의 한 장면. 안감독은 강백호의 친구들로 하여금, 체육관 구석에 숨어서 강백호의 슛모션을 캠코더 찍게 한다. 강백호 스스로는 꽤나 멋진 폼으로 농구를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녹화된 화면의 자신을 자신이라고 믿을 수 없다.


안감독은 자칭 ‘천재’ 강백호에게 스스로를 부정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 고집스러움으로는 반성적 거리를 확보하기란 더더욱 쉽지가 않기에, 자기합리화와 정당화가 강한 것. 그래서 이유가 많고, 변명이 많은 것. 고집이 그 정도가 아닌 이들도, 스스로가 생각하는 이미지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만 모를 때도 있으니까.


흡사 애니메이션을 글로 옮겨 놓은 듯한 소설 <공중그네>에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내가 왜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이 장면도 그렇지만, 괴짜 정신과 의사 이라부 이치로의 풍채나 유머 코드가 안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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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단원으로서는 전성기가 지난 고헤이는 언젠가부터 반대편 그네에서 자신을 받아주는 우치다의 손을 잡지 못한다. 그 신체의 문제가 어떤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정신과를 방문하면서 시작되는 에피소드다.


고헤이는 점점 단원들을 의심한다. 점점 어린 친구들로 채워지는 단원 사이에서 자신이 겉도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부러 친해지려 하는 시도 역시 부작용만 따를 뿐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저들이 자신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결국 공중곡예에서 우치다의 손을 잡지 못하는 건, 우치다 일부러 안 잡아주면서 자신을 노땅 취급하려는 저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때 정신과 의사 이라부의 제안으로, 곡예 장면을 몰래 캠코더로 찍는다. 원래 의도는 우치다를 꼼짝 못하게 할 증거를 확보하고자 함이었지만, 영상으로 밝혀진 사실은 자신의 자세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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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비슷한 또래의 동료들은 이전부터 넌지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고헤이의 자존심이 상할까봐서, 또한 일시적인 슬럼프이겠지 하며 스치듯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정신과 의사 이라부 또한 넌지시 지적을 했었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가 서커스에 대해서 뭘 알겠냐 싶은 마음으로, 고헤이는 간단히 무시했다.


원인이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 그 원인의 기원이 어딘지를 소급하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일들을 떠올린다. 어려서부터 서커스 단원이었기에 전학을 많이 다녔다. 다시금 누군가를 사귀는 일에 지친 고헤이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예전부터 알고 지낸 서커스 단원 이외의 관계는 거의 닫고 살았다.


모두가 나이가 들다 보니, 서커스 단원에도 젊은 피가 수혈된다. 자신을 받아주던 파트너 우치다부터가 그 젊은 피다. 경력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폄하했던 적은 없는데, 믿고 맡기지는 못 했던 것. 때문에 자세가 움츠러들었다.


진단은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았지만, 치유는 그 스스로의 몫이었다. 고헤이는 우치다에게 자신의 증상을 솔직히 말하면서 사과한다. 고헤이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새 친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슬램덩크>에서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타인에 대한 불신 사이에서 자기중심적이라는 지적을 받는 이가 서태웅이었다. 워낙 뛰어난 기량이다 보니, 그걸 자각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그러다 전국 최강의 에이스 앞에서 절실히 느껴버린다. 그 진단을 라이벌 윤대협이 해준 것. <슬램덩크>는 인문학이라니까. 저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고작 23살에 연재를 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들뢰즈가 이런 말을 한다.

“로렌스, 밀러, 케루악, 버로스, 아르토 혹은 베케트가 정신분열증에 대해 정신과 의사나 정신분석학자들보다 더 많이 아는 게 우리 잘못인가?”


문인들은 정신분석을 공부하지 않아도, 문학을 통해 정신의 구조를 밝히는 일에 더 능하다는 의미. 물론 이도 철학자와 문인의 경계가 없었던 시대의 문인들에 해당하는 말. 아무 시대에나 갖다 붙이면서 합리화, 정당화할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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