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사, 교육청, 학부모
교사가 소송에 휘말리면, 교육지원청은 변호사비나 변호인은 지원할 수 있고, 만약 재판을 통해 교사의 무죄가 밝혀지면 학부모에게 모든 비용을 요청할 수 있다.
교육청이 이걸 안 한다는 거야.
슬롯가 변해도, 교사과 학부모와 법리 다툼을 하는 모양새가 좋아 보이진 않잖아. 슬롯는 여전히 ‘그래도 교사가’를 원한다. 성향을 막론하고, 교육감들은 이 문제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고...
교사들의 sns를 가 봐. 학생들과 잘 지내는 모습 뿐이지. 교사 입장에서는 학생과의 불미스런 일들이 자신의 ‘무능’처럼 느껴지는 거야.
이 사안에 대해 교사의 지도방식부터 지적하고 싶은 교육심리학자들도 있을 게다. 현장을 안 겪어봐서 그래. 피그말리온 효과는 폐기되어야 할 이론이다.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이해될 때가 있다니까.
어른이 되어도, 이따끔씩 갖고 싶은 초능력을 상상할 때가 있다. 초능력이 생기면 난 지구 안 지킨다. 공권력을 감당할 수 있을 힘만 있다면, 내 나름의 정의를 실현하지.
저런 학부모들은 결국 지 자식한테 당해. 지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걸.
그러나 이건 너무 긴 세월이 걸리는 결론,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한다.
어느 슬롯이든 어느 조직이든 제 적량의 또라이를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언젠가부터 그들에겐 교사가 만만한 대상인 거지.
졸저 <붉은 노을>에서 주인공이 머그컵으로 가해학생의 외삼촌 대가리를 찍는 장면이 있어. 이 부분만 허구다. 나머지는 실제 있었던 상황 그대로다. 머그컵으로 찍은들 그 뒤의 일들을 어찌 감당할 건데. 조금만 비겁하면 세상을 편히 살 수 있다는 말. 학교에선 그게 잘 안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