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애감과 나르시시즘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히틀러는 화가의 꿈을 지니고 있었으나 끝내 미대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의 취향은 고전 미술이었단다.
당대 유럽에서 유대인들의 입지는 이방인이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제도권 바깥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던 예술의 시기에는 도리어 그런 ‘바깥’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거잖아. 유대인 예술들에게서 이런 새로운 시도가 많았던 것.
니체의 말마따나, 진리란 미적 취향인지도. 물론 이 미적 취향의 차이가 홀로코스트를 일으킨 단일 함수는 아니겠지만...
히틀러의 정무 능력은 형편없었단다. 그저 언변 하나로 권력의 최정점에 오른 케이스이다 보니 이래저래 열등감이 있었다. 그리고 ‘남의 탓’을 하기 시작한 게 독일 대중들에게 먹힌 것. 당시 독일인들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너무 힘들다 보면 삐딱선을 타기도 하잖아. 1차 세계 대전 이후의 배상문제와 경제 대공황의 패닉에서 일어난 집단적 삐딱선에, 너희 잘못이 아니라는 히틀러의 선동이 파문을 일으킨 것.
파쇼를 분석함에 있어, 정신분석을 깔고 가는 현대 철학은 집단의 병리적 증상으로 설명한다.
정신분석에서는 자애감과 나르시시즘을 분리해서 설명한다.
자애감은 말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잘 되어도 안 되어도 내 역량의 결과로 받아들인다. 이유를 외부에서 찾지 않으니까, 잘 안 되면 더 노력을 하는 거지.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자존감을 무너뜨릴 수는 없어서, 남을 폄하하는 증상이다. 본인에 대한 합리화 정당화가 이어지다 보면, 남 탓을 할 수밖에 없는 거지. 그 실체는 열등감인 거야. 자신을 향해 있는 듯하지만 결국 남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사르트르가 말하는 ‘지옥’에 살고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