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편인 공권력
요새 클립영상으로나마 재밌게 봤던 드라마. 예상했던 결말인데, 그 예상했던 결말도 가슴 따뜻하게 봤다. 영화 평론가 라이너에 따르면, 사이다 결말은 그닥 좋은 게 아니래. 드라마 내에서 다 해소할 게 아니라, 차라리 ‘고구마’인 감정을 안고 현실의 각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여튼 내용은 재미있었다. ‘잃어버린 시간’과 ‘되찾은 시간’을 다룬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국정원 요원, 북한 특수요원, 조폭. 그들 각자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찾아야 할 물건이 있다. 신분을 숨기고 한 마을로 숨어든 시간이 10년. 숨어들 때야 이렇게까지 긴 시간일지 자신들도 몰랐지. 그 10년 동안, 그냥 평범한 마을의 구성원이 되어버린다.
국정원 요원은 동선 확보에 유리하다 싶어서 중국집 배달원으로 들어갔다가 사위로 눌러앉는다. 조폭은 ‘친절 편의점’으로 뽑힐 만큼 운영에 진심인 편의점 주인이 되어 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북한 특수요원은 중소기업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묵묵히 견디는 호구가 되어 있다.
과거와 얽힌 사람과 사건이 그 마을을 빼앗으려는 카르텔에 엮이자, 그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전개. 그러나 각자는 묻는다. 이 마을에서의 시간을 다 잊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지에 대해서...
결론은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철학자 들뢰즈의 해석으로... 이미 끼어든 시간을 또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과거의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지금 여기'에서부터 다시 쓰여지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 같은 시간이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것. 그래서 더더욱 이 마을을 지켜내야 한다.
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밖에서 유입되는 캐릭터가, 이 드라마의 킥이기도 한 여검사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 보면, 저들이 어떤 속임수를 쓸까를 예상하면서, 속아주는 척하며 카운터펀치를 준비하는 전개들이 많잖아. 사적 보복이 아닌 법의 심판이란 결말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편인 공권력이 있어야 한다.
예전에 정경심 교수의 자산관리자와 작업을 한 적이 있어서, 이때 검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 그때부터 검사에 관한 기획을 한 번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또 시장을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기에, 시의성과 관련한 생각이기도 했고...
정치판에서가 아닌 문화면에서 검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살피기 시작했다. 경찰과 군인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하는 이들에 의해서 그 존립 근거가 새삼...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말이다. 검사가 검사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 구현하기 어려운 정의라는 게. 이런 검사님들은 또 얼마나 억울해! 본인이 지어올린 업보인 것도 아닌데...
김앤장이 약자의 편은 아닐 터. 약자가 그나마 기댈 곳이 결국엔 판사와 검사일 텐데... 그래서 그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길 기대하는 거지. 그래서 정당한 이가 마땅한 힘을 갖길 바라는 것이고... 파스칼이 <팡세>에 적길, 정당한 것이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당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