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해석
‘달러구트 백화점’이 시작된 이야기는 신화의 형식을 빌린다. 쓸모없는 시간으로 여겨지던 수면을 관장하게 된 ‘현재의 신’은, 희망만 쫓다가 과거를 잃어버린 미래와, 기억에 얽매이다 미래를 잃어버린 과거에게서 잠의 시간을 할애 받는다. 그리고 그 시간을 이용해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정화의 기능성으로 개발한다. 그것이 꿈이었다.
달러구트 백화점은, 수면의 세계로 들어선 이들에게 꿈을 상품으로 판다. 꿈의 시장에 현실 세계를 적용, 그 디스플레이에 백화점의 구성을 차용한다. 잘 팔리는 꿈도 있는가 하면, 잘 안 팔리는 꿈도 있고, 각각의 매대가 다르다.
우리가 잠에서 깰 때는, 깊은 수면상태로부터 몸이 서서히 깨어나는 잠깐의 과정을 거친다. 그때 꾼 꿈을 기억하는 거란다. 그러니까 현실로 넘어오기 직전의 경계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는 것. 그래서일까? 정말이지 그 해석이 불가한 요상한 꿈들도 있지만, 현실과 닿아 있는 느낌을 받는 꿈들도 있지 않던가.
프로이트의 설명으로도 꿈은 오롯이 무의식인 게 아니다. 의식의 플랫폼을 빌려 자신을 영사하는 메커니즘이다. 의식의 플랫폼을 빌렸기에 그토록 실감나는 것. 프로이트가 왜 꿈을 연구했는가 하면, 그것이 무의식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라는 점에서...
무의식이란 것도 드러나는 증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잖아. 또한 무의식을 의식의 언어로 해석할 것이냐의 문제. 때문에 정신분석이 신화를 연구하는 것. 그 상상력이 어디서 왔겠냐 말이다. 오랜 세월동안 꿈의 언어들이 직조해 온 스토리텔링에서 공시적 통시적 요소를 추출해 활용하는 방법론이다. 때문에 정신분석의 페이지들을 읽다 보면 고고학과 문화인류학의 성격을 지니는 구간들이 있는 것.
멜라니 클라인부터가 꼭 꿈을 해석해야 하는 건가에 대해 반문한다. 들뢰즈는 꿈을 해석하는 일보다도 그것이 작동하는 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스크루지 영감의 꿈을 어찌 해석할 것인가 보다도, 그 꿈으로 인해 그가 변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비판의 입장이든 옹호의 입장이든, 꿈은 무의식이 의식에게 건네는 시그널이다. 우리의 실재적 열망은 무의식 쪽에 있고, 의식은 그것이 관철되지 못한 증상을 나타낸다는 거야. 우리의 의식이란 게 때로 꽤나 비겁하고 위선적이잖아. 니체에 따르면, 꿈은,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진정성 없는 허구인지를 보여준다. 깨어야 할 건 꿈이 아닌 현실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