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 문법의 문제

(이중) 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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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기다려졌다’는 어색한 문장이예요.”

“왜요?” 영주가 물었다, “아... 피동...” 영주가 생간 난 것이 있다는 듯 말을 흐렸다.

“네. 맞아요. 그거 때문이에요.”

승우는 피동에 관해 간략히 설명했다.

“피동이란 당하는 것이잖아요. ‘먹다’의 당하는 표현인 ‘먹히다’처럼. 그런데 여기서 ‘기다려진다’는 기다림을 당한다는 뜻이 돼서 어색하죠. 그러니 이렇게 고쳐야죠, ‘손님을 기다렸다.’


....


“그렇게 고치면 제가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제가 원하는 만큼 표현되지 않는 것 같아요.”

“왜요?”

“나도 모르게 손님이 기다려지는 마음. 이런 애타는 마음. 이런 마음이 ‘손님을 기다렸다’에서는 느껴지지 않잖아요.”


- 황보름,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기다림을 당한다’는 뜻이라면, 이를테면 상대가 약속 시간보다 늦게 도착해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다림에 처한 상황인 거잖아. 그러나 ‘손님이 기다려졌다’는 본인의 기대 심리를 반영한 경우이니, 또한 손님맞이에 대한 의지도 개입되는 것이니 마냥 피동으로만 보기도 애매하지. 기다림의 원인은 손님이 아닐 수도 있잖아. 이를테면 서점을 새단장한 이후, 주인장의 들뜬 마음이 원인일 수도 있는 거고...


그러니까 영주가 말한 것처럼 ‘기다림’의 양상에 대한 보조적 용언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영주의 언어감각이 더 세심한 것 아닐까? 내 전공인 중국어에서는 보어(補語) 개념으로 설명된다.


나도 모르게 기대하는 심리가 피동적 흐름이라고 한들,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인가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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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중피동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과연 이중피동인가도 국어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데,

이중피동을 쓰면 안 되는 것인가의 문제도 걸려 있다.


국어학자들도 비문이 아니라고 하는데...

언론계, 출판계는 일괄적으로 적용할 편집 기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거 아니야. 그랬던 것이 이젠 잘못된 표현으로 규정하는 교과서도 있단다.


물론 문법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지. 그러나 표현의 풍요로움과 자연스러움을 저해하는 ‘담론’이라면 굳이 따라야할 이유가 있나?


‘잊히 계절’만큼이나 어색한 계절이 있을까? 내가 사랑한 선율에 실린 ‘잊혀지다’의 가사를 ‘잊히다’로 바꾸는 것도 너무 어색하고... 내게 잊힌 시간은 없다. 그 모두가 잊혀졌을 뿐. 정말 그 차이를 몰라서,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여진 시>까지 들먹이며 그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는 것일까?


저자 분들에게도 난 이런 경우에 대해 별 이야기를 안 한다. 그런데 저자 분들 스스로가 지키려고 노력을 한다. 그 담론의 근거가 무엇이든 간에, 지적당하기 싫으니까, 아예 조심하는 거지. 소설의 인용 부분이 그런 내용이기도 하다. 황보름 작가도 뭔가 석연치 않은 거지. 이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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