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구절, 들뢰즈의 철학
들뢰즈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주름, 접힘, 펼침… 뭐 이런 용어들이 나오는데, 들뢰즈 자신도 명쾌하게 개념 정리를 해 놓은 적이 없으면서도 빈번이 사용하는 개념이다.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이 개념은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 그리고 더 거슬러 오르자면 플로티노스에서 연유한다. 들뢰즈 저 자신이 철학사를 다시 썼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들뢰즈를 이해하려면 철학사 전체를 뒤적여야 하는 경우가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씨앗에 비유할 수 있다. 씨앗 안에 담기 줄기와 잎, 가지와 열매의 가능성은 씨앗 안에 접혀 있고, 싹이 펼쳐지면서 그 싹이 외부조건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저 자신의 미래를 생성해간다는….
때문에 들뢰즈에게는 사물 그 자체만이 인식과 존재의 조건이 아니다. 그 사물을 사용하는 사용처와 사용자까지 포함하는 조건이며, 그것은 이미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외부'라는 논리. 물론 이런 생각이 들뢰즈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고, 니체도, 하이데거도, 그 이외의 많은 현대철학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전제다. 꽃으로서의 혹은 열매로서의 미래는 씨앗이 지닌 속성 그 자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외부 조건이 어떠한가에 따라 씨앗의 미래도 달라진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해석에서도 들뢰즈는 아직 발현되지 않은 가능성이 잠재된 상태와 발현 조건들에 초점을 맞춘다.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작가를 꿈꾸는 입장이었기에, 사물을 관찰하는 방법은 그 사물이 글로 쓰여질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한 고민을 포함한다. 그 사물로부터 뻗어 나올 스토리텔링은, 그 사물이 외부조건과 맺고 있는 관계를 살피는 관심으로부터 시작되며, 모든 것이 이미 그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마들렌 과자 안에 잠재되어 있는 서사였던 것처럼, 씨앗으로서의 조건들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들이다.
그것들은 그저 하나의 외양을 하고 있을 뿐, 그 밑에 감추고 있는 비밀을 나에게 완전히 열어 보일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자신이 과연 작가의 재능이 있는가를 고민하던 소년 시절의 회상 속에 등장하는 대사. 그만큼 글쓰기의 관건은 글을 쓰는 행위 이전에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것. 이제까지 쓴 글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그 정리를 프루스트의 어록으로 대신하자면, 문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라는 이야기. 글쓰기는 그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마침 <논어>에 대신할 수 있는 구절이 적혀 있다.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가까운 데에서 취하여 비유할 수 있다면, 仁의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풀 한 포기에도 우주가 담겨 있네 어쩌네를 떠들기 전에, 그 풀 한 포기가 심어진 지구의 대지를 세심히 살필 수 있는 감각을 먼저 갖추라는 것. 재미있는 건, 주자의 주석이 仁과 不仁을 관용과 인색의 ‘펼침’으로 설명하는 부분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도올 교수의 <논어>를 읽어보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