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리쾨르, <시간과 이야기> - 언어와 커뮤니티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흄

... 비트겐슈타인의 견해를 따라 우리는 의도적 행위란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것은 내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 수단이 되는 동작이다.’ 그런데 언어의 사용과 이해는 하나의 생활 공동체인 언어 공동체와 관련된 상황을 전제한다. <철학적 탐구>에서 볼 수 있듯이, ‘의도는 그와 관련된 상황과 관습, 그리고 제도 속에 끼워져 있다.’ 그 결과 우리에게 완전히 낯선 행위를 목적론적으로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는 없다. 바로 이처럼 행동과 관련한 상황을 참조함으로써 ‘행위의 의도성은 행동 주체와 관계된 스토리 속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자리’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


리쾨르에게서 ‘이야기’라는 키워드는 줄곧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전제한다. 이 챕터에서는 흄의 ‘심리적 인과’로 부연한다. 자신이 겪고 있는 시간, 그 서사 안에 부합하는 목적성을 지닌다는 것. 종국엔 현상학에 관한 이야기다.


이를테면 남녀의 언어가 다르다는 건, 각자가 받아들이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 웃긴 건, 미묘한 감정이 섞이지 않은 사이라면, 굳이 남녀의 언어를 운운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 심리적 상황까지가 ‘이야기’의 요소인 것.


의도는 목적성을 지니기 마련. 그것이 어떤 표현으로 흘러나오는가는 그가 겪은 시간의 결과다. 의도치 않게 엉뚱하게 내뱉는 말조차, 프로이트가 ‘실언’으로부터 보다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길어 올리듯, 자기 서사의 일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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