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의 비전문성
전공자들이 지닌 비전문성.
그 전공지식을 일반대중들이 어떻게 바라볼지를 전공자 입장에서 말한다. 그러니 대중적일 리가 있나?
내심 걱정을 하고 갔는데, 의외로 쉽게 풀린 날.
학계의 문법을 내려놓고 대중서 시리즈를 내보고 싶다면서 보여주신 원고는 그 접점을 고민한 흔적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함정의 함수 하나. 나도 전공자라는 거. 그 시선 끝에 맺힌 춘추전국 관련 컨텐츠가 과연 대중성일까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연저지인(吮疽之仁)이라는 고사가 있는데, 오기(吳起)라는 인물의 일화다. 그가 저술했다고 추정되는 <오자병법(吳子兵法)>, 비전공자들에게는 낯선 제목이겠지? 그럼 이런 이야기는 들어봤을까? 죽을 각오로 싸우면 살 것이요, 살기만을 바라면 죽을 것이다.(必死則生 幸生則死)
이를테면 이런 고민...
대화 중 이문열 작가의 ‘평역’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정치색을 배제한, 작품 자체에 관한 이야기다.)
번역 작업은, 외국어를 얼마나 정확하게 옮기느냐가 관건일까? 아니면 번역된 언어의 입장에서 얼마나 문학적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일까? 한강 작가의 수상도 번역자의 공로가 컸다잖아. 때문에 번역자 자신이 글을 잘 써야하는 것. 그래서 번역도 하나의 창작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번역가로 잘 알려진 이들이 대부분 외국어 학부 교수들이다. 얼마나 치밀하게 옮겼는가의 이슈. 이래서 가뜩이나 어려운 철학서를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더 어려운 거.
이문열의 ‘평역’은 외국어 전공자 입장에서는 문제가 있는 번역이다. 실상 문제될 게 있나? 작품을 왜곡한 것이 아니라면...
‘유려한 문체’라는 표현을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프루스트 문체가 그렇다 치면, 그 유려함을 치밀하게 옮긴다고 해서 독자들에게 그 유려함이 전달될까? 차라리 유려하게 글을 쓰는 이가 그 뉘앙스에 비껴가지 않는 선에서 ‘평역’을 하는 것이, 프루스트의 묘를 간접적으로라도 느껴보는 경험을 제공하는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