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
... 로자 룩셈부르크는 스파르타구스라는 단체에서 립크네히트와 어깨를 나랗니 하고 싸우다가 1919년에 암살당했다. 대부분의 독일 여성들은 체제에 찬성하는 태도를 표명했고, 그 가운데 몇 사람은 국회에 의석을 차지했다. 그런데 히틀러는 해방된 여자들에게 다시 한 번 ‘부엌‧신앙‧아이’라는 나폴레옹의 이상을 강요한다. “영자는 한 사람일도 의석을 차지하는 것은 국회의 불명예이다.” 이렇게 히틀러는 선언했다. ...
... 스파르타에서처럼 여자는 개인보다 국가에 훨씬 더 의존했다. 그 때문에 자본주의 제도에서 살고 있는 부르주아 여성보다 더 자주적인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고루 가지고 있었다.
... 여권 운동이 가장 큰 성과를 올린 것은 소련에서였다. 여권운동은 19세기 말에 지식층 여학생들 사이에서 싹텄다. 그녀들은 개인적인 입장보다 혁명운동 전체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 보부아르, <제2의 성>, 동서문화사, p175 -
보부아르가 인용하는 엥겔스에 따르면, 사유재산 제도가 발전함에 따라 여자는 점점 ‘소유’로 인식되었다. 수렵시대에는 남자들은 사냥을 하고, 여자들은 여자의 노동력으로도 감당할 수 있을 규모의 농사를 지었다. 그러던 것이 농경슬롯가 정착되고, 청동기의 사용으로 수확량이 늘면서, 노동력의 차이가 위계를 정하기 시작한다. 성의 차이가 바깥일과 집안일로 구분된다. 잉여의 생산물이 쌓이고 그 가치가 화폐로 저장되면서, 경제 주체인 남성은 부수적 활동에 그치는 여성을 소유물로 여긴다. 사유재산을 오래도록 지킬 수 있는 방법, 즉 상속자의 잉태와 양육 목적에서 여자가 필요했다.
아렌트에게서도 그런 면모가 확인되지만,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와도 연관성이 있지만, 마르크스주의를 페미니즘의 함수로 걸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역사 내내 마르크스의 예상보다 더 견고하면서도 유연한 구조를 지닌 자본주의라는 사실이 증명되기도 한 바, 지금의 시대에 ‘맑스’를 연호하는 것도 시대착오이긴 하지만, 여성의 권리가 아직은 제한적이었던 시대를 살았던 여성 입장에서는 일단 양육의 문제를 슬롯가 바카라임을 지는 구조니까. ‘모성의 신화’, 그 굴레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켜주는 철학이기는 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