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된 자아, 피로슬롯
... 적어도 테일러의 ‘훈련된 원숭이’라는 말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목적의식’이라는 표현이 익살스럽게 보일지 모르겠다. 테일러는 사실상 미국슬롯의 목적을 노골적인 냉소주의로써 표현하는 것이다. 그 목적이란, 노동자 속에 자동적 ‧ 기계적인 태도를 최대한으로 조장하고, 노동자 쪽의 지성 ‧ 상상력 ‧ 창의력들의 적극적 참여를 일정하게 요구하는 기능적 ‧ 전문적인 작업의 구래의 심리 ‧ 신체적 연관을 파괴하여 생산적 활동을 오직 기계적 ‧ 신체적인 측면으로만 환원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서 이러한 것들은 새롭거나 독창적인 것이 아니며, 단지 산업주의 자체와 함께 시작되었던 긴 과정의 가장 최근의 국면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
구체제를 향한 비판으로 가득한 니체의 저서에서도 미국 문화에 대한 호감을 표하는 페이지들이 있다. 그만큼 당시 유럽이 바라보는 미국은 봉건적 잔재가 없는 신생국이었다.
노동의 착취에 있어서도, 자본가들의 무작정 갑질보다는 효율적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와 함께 묶이는 포드 시스템이 유럽 자본가들의 경영과 달랐던 점 중 하나는 고임금이다. 고용햐는 입장에서는 부린 만큼 주겠다는 것. 고용되는 입장에서는 한 만큼 받는 것.
한병철의 <피로슬롯>, 더 거슬러 올라가면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에서 지적하는 문제가 ‘착취하는 자아’이다. 계발과 성장의 담론으로 스스로를 고무시키면서 소진시키는 모순과 딜레마, 그 사이에 돈이 있다. 돈만큼이나 강력한 동력도 없지 않은가. 더 벌기 위한 자발적 동의, 그러나 실상 그 슬롯로부터 권고되는 상징적 갑질도 덧대어져 있는 것이긴 하지.
강권과 자발이 혼재해 있다는 점에서, 자본은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그람시는 미국의 자본주의를 비판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정신문화로 몰고갈 수 있는,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헤게모니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배울 건 배워야 한다는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