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떠나는 여행이나 대단한 장소가 아니어도, 세상의 보폭에서 잠시 비켜서서 흐트러진 숨을 고를 자리가 필요할 때가 있다. 해 질 무렵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는 방 한구석의 익숙한 소파, 문득 들른 한적한 카페의 구석진 창가처럼, 오롯이 나를 받아주는 작은 틈 하나면 충분하다.
문밖의 시간은 늘 빠른 대답과 빈틈없는 표정을 요구한다. 세상이 붙여준 역할들에 묶여 종종걸음으로 하루를 채우다 보면, 정작 내가 어떤 숨을 쉬고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리기 쉽다. 타인의 기대를 채우느라 바깥으로만 쏠려 있던 마음은 어느새 닳고 헐거워져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린다. 그럴 때 나만의 자리로 조용히 돌아오는 일은, 종일 흩어져 있던 마음의 조각들을 제자리로 가만히 모아오는 시간이 된다.
창가에 앉아 나지막하게 불을 밝히고, 익숙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는 순간. 누구에게도 나를 증명할 필요 없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혼자가 되는 그 자리에서 하루의 소음은 서서히 잦아들고 팽팽했던 긴장도 비로소 풀린다.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낮 동안 소란했던 생각들이 가라앉으며 비로소 내 안의 고유한 결이 만져진다.
마음의 평온은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세상과 나 사이에 둘 수 있는 고요의 깊이에서 온다. 바깥세상이 아무리 거세게 몰아쳐도, 돌아와 조용히 숨을 고를 수 있는 나만의 한 뼘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오늘도 나는 작은 불빛 아래 가만히 머물며, 수고했던 하루의 끝을 단정하게 매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