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누군가의 지나친 관심이나 가벼운 참견이 다정함의 탈을 쓰고 불쑥 내 삶의 경계를 넘어올 때가 있다. 안부를 묻는 척 던지는 호기심 어린 질문들, 내 사정을 다 안다는 듯 얹는 무심한 조언들 앞에서 마음은 종종 서걱거리며 닳아간다.
젊은 날의 나는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조금 버겁고 불편해도 웃는 낯으로 다 받아주었고, 선을 넘는 질문 앞에서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였지만, 그럴수록 돌아선 내 마음에 남는 것은 공허함과 짙은 피로뿐이었다.
하지만 긴 계절을 건너오며 알게 되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둘 필요는 없다는 것을. 타인의 시선과 말들로부터 내 평온을 지키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 즉 나만의 단단한 울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는 안다. 무례함에 똑같이 날을 세울 필요도, 그렇다고 나를 깎아내리며 맞춰줄 필요도 없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정중하게 대하되,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만큼은 함부로 내어주지 않는 침묵의 선을 긋는다.
친절하되 쉽게 곁을 주지 않는 태도는 냉정이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가장 성숙한 방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바람이 지나갈 틈이 있어야 관계가 숨을 쉰다. 타인이 짐작하는 나와 진짜 나 사이에 정갈한 여백을 두고, 나는 오늘도 내 몫의 평화를 조용히 지켜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