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나 그리고 둘》을 보고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을 보다가 잠들었다.
러닝타임이 거의 세 시간이다. 전날 밤에 보기 시작했다가 중간에 잠들었고, 다음 날 아침에 나머지를 마저 봤다. 솔직히 보는 동안에는 몇 번쯤 이런 생각을 했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데 꼭 세 시간이나 필요할까.
아버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딸에게로 넘어가고, 딸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으면 이번에는 어린 아들이 나온다. 누가 주인공인지도 선뜻 말하기 어렵다. 누구 하나 마음 놓고 따라갈 수 없어서 처음에는 조금 산만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몇 편 찾아 읽었다. 보는 동안에는 그냥 지나쳤던 장면들이 뒤늦게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민민이 우는 장면이었다.
민민의 어머니는 쓰러져 의식을 잃는다. 가족들은 그 곁에 앉아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깨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에게라도 계속 말을 걸어주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민민도 자신의 하루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하루를 다 말하고 나니 다음 날 할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침에 일어나고, 회사에 가고, 집으로 돌아오고. 몇 분이면 설명할 수 있는 자신의 삶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 결국 무너진다.
나는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일기를 쓰다 보면 비슷한 문장이 자꾸 나온다.
오늘도 진료가 바빴다.
피곤했다.
퇴근해서 밥을 먹었다.
바카라을 조금 읽었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어제와 오늘이 별로 다르지 않다. 하루 종일 분명 많은 일을 했는데 막상 글로 옮기고 나면 몇 줄만 남는다.
그렇다고 정말 그 몇 줄이 하루의 전부였을까.
같은 피곤함이라도 어떤 날에는 집에 돌아오는 것만으로 조금 풀리고, 어떤 날에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밤늦게까지 남는다. ‘밥을 먹었다’는 한 문장 안에도 서로 다른 저녁이 있다. 별말 없이 밥만 먹은 날과 이야기를 하느라 몇 번이나 수저를 내려놓은 날은 전혀 다르다.
기록에 남은 몇 줄만 읽고 그날을 다 알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 하루도 그러한데, 다른 사람의 하루는 얼마나 더 그럴까.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사람은 어린 양양이었다.
양양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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