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지나고 있습니다.

bysomewhen

더위에 안녕하셨나요?


8월 23일이 처서였는데, 처서가 지나고도 한참 동안 열대야가 계속됐습니다. 낮 시간에는 어느 해의 혹서기를 연상시켰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은 흐리고 장마를 떠올리게 만드는 비가 내렸습니다. 새벽 시간에도 선선한 기운보다는 공기에 열감이 습기에 가볍지 않게 얹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난히 가을이 오는 속도가 더뎌서 긴 여름을 버티는 마음이 지쳐갑니다. 길고 센 여름 탓인지 한동안 몸은 유난히 무거웠습니다. 기면증에 걸린 듯 갑자기 잠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금년 들어 꾸준히 하던 새벽 달리기를 일주일 좀 넘게 쉬었습니다. 쉬는 동안에도 서너 번 달리기를 했지만, 되도록 몸을 덜 쓰려고 했습니다.


잔잔한 영화를 찾아서 봤습니다. 다시 본 것도, 처음 본 것도 있었습니다.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The Worst Person in the World)>가 특히 좋았습니다. 인연이 차갑게 후려갈기는 따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인간의 저열함 같은 것들에 공감했습니다. 빠른 속도와 강렬한 쾌감 보다 어딘가 더딘 면이 있고, 잔잔한 떨림이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여름 속에서 모든 속도를 낮췄습니다. 더운 날 몸 상하지 않고 달리려면, 속도를 낮춰 달려야 합니다. 그래야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습니다. 여름날에는 평소 보다 속도를 낮춰도 호흡이 쉽게 모자라지고, 그래서 맥박이 많이 뜁니다. 생각보다 더 속도를 늦춰야 덜 지칩니다. 멈추지 않도록 여름을 천천히 달렸습니다.


IMG_0627.heic2026년 9월 2일 동트기 전


그렇게 속도를 늦추며 남은 여름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 내린 비가 그치고 난 후에 여름이 뒤로 크게 한 발짝 물러선 것 같은 날씨가 됐습니다. 새벽에도 여전히 20도가 넘지만, 22~23도 정도가 되면서 제법 선선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일주일의 기온 변화도 30도 아래에서 이뤄질 모양입니다. 열이 식은 땅이 공기 중의 수분을 붙잡아 물방울을 맺게 만들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름에서 비껴서기를 시작하면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꽤 오래도록 지속했던 칩거 생활도 접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몸과 마음을 긴장시키는 관계를 전처럼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천천히 사람들 속에서, 버려두었던 자리를 찾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어떤 희망을 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모두 무의미하다고 여기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성급하게 다짐하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자꾸 다짐하게 되네요. 다짐하게 되는 것은 내일이 남은 사람의 숙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짐이 더는 공허해지지는 말아야 할 텐데요. 걱정입니다.


여름이 잊을만하면, 숨을 헐떡거리게 하네요. 그래도 숨 넘어가지는 않았습니다.



탈없이 편안하게 남은 여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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