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게 덜기

bysomewhen

한없이 가라앉고 있어서 이제 언제 떠오를 수 있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허우적거리기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천천히 가라앉기를 바라며 버둥거리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 그러다 한 번씩 주먹이 날아들 때면, 얼마나 더 내려갈 수 있는지, 될 대로 돼라며 자포자기해 손발에 힘을 풀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 의미 없이 그치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도무지 손끝에까지 뻗지 않는 힘을 몸속 어디선가부터 밀어낸다. 일상의 사건들이 순리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앞세운 문장들로 이어지곤 한다.


한숨이라도 쉬면, 혈관을 타고 가던 그 미약한 힘이 더는 뻗지 못할까 봐 얼굴이 벌겋게 될 때까지 숨을 꼭 참는다. 숨이 갇혀 온몸이 부어오르는 것 같다고 느낀다. 무거운 공기가 몸 바깥으로 나가지 못해서일까? 존재가 하루를 켜켜이 쌓아 올린 시간의 무게만큼 무거워진다. 벗어날 방법을 도무지 찾을 수 없다.


그런 날들이 켜켜이 쌓이던 중에 거장의 수상소감을 들었다.



IMG_9834.jpg제62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화면 캡처

"이렇게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그런 일이 있을 때도 끊임없이 농담을 시도하고, 주변 사람들을 웃기려고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농담을 자꾸 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분노와 슬픔의 에너지의 김을 빼고, 어떤 출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백상예술대상에서 박찬욱 감독의 수상 소감 중에서



존재를 견딜 수 없도록 만드는 내 속의 분노와 슬픔, 그리고 우울의 공기를 빼는 통로를 찾고, 한편으로는 그 길을 뚫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존재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우습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존재가 한없이 무거운 것은 어떤 실패나 그 실패가 끌고 오는 좌절 때문이 아니라, 실패를 자신이 어떤 의미로 살아있는 최후의 지점이라고 생각하는 지나친 자기 보호심리 같은 것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리숙함이나 무능력함을 꺼내놓는 것만으로 자신이 최후의 지점에 서지 않는다는 것을 거장의 말에서 배웠다고 생각했다.



이것으로 막힌 구석이 조금 뚫릴 것 같아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농담하지는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무겁고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중에 보낸 글이 돌아왔다. 수정해서 보내면 다시 심사를 진행하겠다는 조건을 달고. 존재의 무게에 집중하지도 못하게 움직이라고 한다. 하, 농담을 버리고 다시 기회를 본다. 존재의 저울을 잠시 뒤로 미루고, 언제나 그랬듯 다시 일으켜 세울 기회를 잡자고 다짐한다.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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