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노는 건 재미없어

6th

by칸테

6. 장 아빠랑 노는 건 재미없어!!

어느덧 딸아이는 8살이 되어 초등학교 1학년을 입학하게 되었고, 나와 딸은 어느 가정처럼 함께 지내게 되었다.

딸과 함께 사는 건 어색하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았다 이제는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불편한지 자신의 감정상태 생각 표현등에 크게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매일 지켜야 하는 약속이 하나 생겼다.

그건 바로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 아침까지는 고모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나도 쉬는 날이 있어 좋았고, 아이도 즐거워하며 좋아했고, 고모들도 딸아이와 어릴 적부터 함께 있던 날이 나보다 더 많았기에 자신의 딸처럼 아껴주었다. 그렇게 매주 금요일이면 나는 작은 캐리어에 딸아이의 옷 2벌과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 챙겨 같이 보내주었다.

“아빠 오늘은 고모네 가는 날이지??”

참 매일 금요일만 되면 나에게 하는 질문이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이것도 매주 매달 몇 달간 지속되니까 점점 마음 한구석에서 잘 마주하지 않던 나의 또 다른 자아가 소리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소리는 가장 어두운 동굴 속에서 있다. 가끔 나를 성장하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존재였다.

“이 녀석이 또 시작이네…”

나는 딸아이가 그렇게 말을 할 때마다 그놈 아니 그녀? 하여튼 내 안의 다른 자아와 만나지 않기 위해 억압하고 억제하려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언제 나보다 한수 위였고, 내가 항상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여름 가장 더운 날 나는 또한 차례 나의 그림자와 마주하게 되었다.

“아빠 오늘은 고모네 가는 날 맞지?? 어제 약속했잖아!!

그 녀석은 마치 그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의 목소리가 끝나면서 동시에 서운한 감정과 설명할 수 없는 연결의 끊어짐음 느끼게 하였고, 나는 딸아이에게 한마디 하였다.

“아니 오늘은 안가..”

하.. 왜 이런저런 말도 아닌 말을 하였는가 나에게 원망하며 내 안에 그 무언가에게 지고 말았다.

아이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왜 약속을 안 지키냐, 자기는 오늘 고모네 가야 한다며 나를 다그치며 차 안에서 집으로 가는 동안 고모네를 안 보내주면

안 되는 조건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고모네를 안 가면 나는 아빠랑 뭐 하냐 집에서 아빠는 공부만 하잖아.

아빠집은 너무 조용해 너무 심심해 놀사람이 없다 등등 정말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고, 나도 동의할 정도였지만, 그 말들이 나를 더욱 서운하게 만들고

그놈은 나의 이런 감정형태를 즐기듯이 딸과 함께 나를 더욱 놀려댔다.

아 정말 너 오늘만 아빠랑 있자 왜 금요일만 되면 고모네를 가야 하는 거야.

너 가면 아빠는 혼자집에 있잖아 요번 주만 아빠랑 같이 있자.

다음 주에 아빠가 보내줄게. 나는 딸아이를 꼬셔볼 수 있을 만큼 악마의 유혹보다 더한 말들을 했지만 결국 나는 실패했고.

결국 뒷자리에 있던 캐리어가방과 함께 고모집에 내려주었다.

고모를 보자마자 마치 가족 상봉한 것처럼 너무 반거워하며 기뻐하는 그 뒷모습이 하…

“매일 보는 고모이면서 그렇게나 좋을까”

딸아이를 내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딸아이와 나눈 대화를 복기하며 내가 왜 그런 쓸데없는 말을 했을까 하며 자바카라 아닌 자바카라을 하며 다시 한번 그 녀석과 일대일로 마주한 채 억지로 그 마음을 억제하려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거의 100전 100패의 기록이 있던 지라

단순한 억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예전에 깨달은 나는 이것도 얼마못가 또 터지겠지 하며 내 마음을 스스로 달래기 시작했다 아니 그 녀석을 달래기 시작했다. 그래 집에 가서 내가 왜 그랬는지

무엇이 서운한지 딸아이가 어디 있든 나의 딸인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인 것을

왜 딸아이와 나와의 연결이 끊어진 느낌을 받았는지 되새겨 볼 테니까 가만히 좀 있어봐 운전 좀 하게, 나 좀 도와주라.

그렇게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운동을 나가기로 마음먹고

한참을 뛰며 정신과 마음에 있던 악또아니면서 선도 아닌 그 이상한 감정들을 배출해 내고 집에 들어와 샤워를 했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방금 전까지 차 안에서 했던 고군분투와

혼잣말을 했던 시간들이 허무할 정도로 사라져 버렸다.

정말 그때 그 순간만큼은 할 이야기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말도 안 되게 운동이 끝난 후 샤워를 하니 말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내가 이래서 그 순간 들어온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싫어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좋기도 하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끝나지 않았다. 왜 나는 내 딸아이의 순수한 마음의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는가..?

1. 혹시 내 딸이 나와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을 느껴야 한다는 것인가?

2.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일까..?

3. 아니면 내가 생각한 딸과의 거리감이 있기에 그것에 대한 깨짐이 나에게 그런 언어로 다가왔고 그 해석을 내 딸아이의 말 한마디에 붙여 넣게 되었는가?

지금까지 의 나의 생각 중 3번이 가장 정답인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딸아이에게 어떠한 정체성을 내 멋대로 부여하고 만들어 놓고 그 해석을 해석보다 그 나의 믿음을 내 딸아이의 동의도 없이 허락도 없이

이기적으로 넣어놓고 내 믿음과 내 딸아이의 태도의 불일치 속에서

나의 생각, 믿음이 잘못되었다고 되짚어 보기 도전에 딸아이에게

내 감정과 생각과 믿음을 던져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갑자기 뮤지컬의 지금이 순간의 노래가 생각난다. 정말 뜬금없고 관련 없지만

그냥 그 노래의 제목이 나를 흔들어 놓았고, 비참하게 했다.

언제 내가 이런 태도와 신념을 내 딸아이에게 붙여 놓았던가.. 정말 자존심이 상하는 건지 죄바카라감이 밀려오는 것인지 설명 불가한 이 감정.

정말 답답하다. 그렇게 나는 이제 답을 내려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딸아이에 부여한 내 믿음들이 곳곳에 숨어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나도 알 수 없게 내가 붙여놓은 것들

나는 그것들을 찾아야 한다. 아 이렇게 실수하고 잘못하면 배워야 하는구나

정말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알고 나서 그 순간을 지나가기 전까지는 힘들지만, 그 순간을 지나가면 나는 한층 더 성장해 있는 기분이 들면서, 딸아이에게 더 나은 사람이 성숙한 아빠가 되어가는 이 과정이 너무 고맙고, 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게 된 것에 대해 많은 감사함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지금 하나를 찾아냈다.

일주일 뒤 금요일.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아빠, 오늘 고모네 가는 날이지?” 역시나였다.

금요일만 되면 한 번도 잊어버리는 법이 없다.

“응. 가는 날이야.”

“진짜?”

아이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보는데 또 그 녀석이 슬쩍 올라왔다.

‘그렇게 좋아?’

그리고 그다음 말도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아빠랑 있는 것보다 고모네가 더 좋아?’

나는 잠시 아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말을 삼키고 대신 물었다.

“오늘 뭐 챙겨갈 거야?”

“토끼 잠옷!”

“그거 하나면 돼?”

“아! 인형도!”

아이는 자기 방으로 뛰어갔다.

나는 작은 캐리어를 꺼냈다.

옷을 넣고, 속옷을 챙기고, 칫솔을 넣었다.

아이는 옆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난주와 달라진 것은 사실 별로 없었다.

아이는 여전히 고모네 가는 것을 좋아했고,

나는 여전히 조금 서운했다. 신기하게도 깨달았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하나가 달라졌다. 이번에는 그 서운함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었다.

아이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었다.

아이에게 해결해 달라고 할 필요가 없는 감정이었다.

그제야 그동안 내 안에서 나를 괴롭히던 녀석의 얼굴이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

질투이기도 했고, 서운함이기도 했고,

어쩌면 외로움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아래에는 하나가 더 있었다.

딸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나는 딸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 사랑 속에는

‘너도 나를 가장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빠도 사람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하지만 아이에게 그 마음의 바카라임까지 맡길 수는 없었다.

내가 외롭다고 아이가 친구를 만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서운하다고 고모를 덜 좋아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나를 사랑하면서도 고모를 좋아할 수 있다.

나와 있는 것이 편하면서도, 고모네에서는 더 신나게 놀 수 있다.

그 두 가지는 싸우는 마음이 아니었다. 싸우게 만든 것은 내 머릿속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세상을 왜곡하지 않고 알려주는 번역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아이의 말을 내 마음대로 번역하고 있었다.

“고모네 가고 싶어.”

아이의 말은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짧은 문장 뒤에

‘아빠랑 있으면 재미없어.’‘아빠보다 고모가 좋아.’

‘아빠랑 있기 싫어.’라는 문장을 마음대로 붙이고 있었다.

아이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참 억울했을 것이다.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혼날 뻔했으니.

나는 캐리어의 지퍼를 닫았다.

“다 챙겼어?”

“응!”

“가자.”

고모 집 앞에 도착하자 아이는 안전벨트를 풀고 캐리어를 끌어안았다.

문을 열어주자 신나게 뛰어갔다.

“고모!”역시나 가족 상봉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조금은 서운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괜찮았다.

아이와 나의 연결은 아이가 내 옆에 있을 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

아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덜 아빠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가 즐거운 곳으로 뛰어갈 수 있게 문을 열어주고,

다시 돌아올 곳에 내가 있는 것. 어쩌면 그것도 아빠의 역할인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은 역시나 조용했다.

문득 아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빠 집은 너무 조용해. 아빠는 공부만 하잖아.”

이번에는 이상하게 그 말이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웃겼다. 생각해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래. 그것도 좀 고쳐야겠다.”

아이의 마음을 바꾸려고 하기 전에, 아빠랑 있는 시간도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들어보는 것.

그게 훨씬 쉬운 답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에는 아이와 뭘 하고 놀까.

나는 신호를 기다리며 휴대폰 메모장에 짧게 적었다.

‘딸이 좋아하는 놀이 물어보기.’

신호가 바뀌었다. 나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딸아이에게 붙여놓았던 내 생각 하나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진짜 딸아이를 조금 더 알아갈 공간을 남겨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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